“새벽잠 없어서 7시 출근도 거뜬” 60세 여성 63%가 일하는 일본 [왕개미연구소]

이경은 기자 2023. 2. 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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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연금만으론 생활하기 어려운 고령자들
하루 5시간, 주4일 일하면서 월급 115만원 받아
[행복한 노후 탐구]

“나이 때문인지 새벽 3~4시면 눈이 저절로 떠져요. 아침 7시반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한 번도 지각한 적은 없어요.”

일본 사이타마현(県) 미사토(三郷)시에 위치한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 230명 중 40명(17%)은 70대 이상이다. 특히 여성 고령자들이 많은데, 새벽 기상을 힘들어 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살려 3040 육아 세대 대신 오전에 주로 일을 한다.

71세인 다카하시 와카코씨는 매일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해 하루 5시간씩 일을 한다. 점심 도시락을 만들어 진열·판매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7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들고 용기에 척척 담아낸다. 다카하시씨는 “77세인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남편은 지병이 있어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건강만 허락한다면 75세까지 일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 2021년 기준 일하고 있는 노인(65세 이상)들은 모두 909만명에 달한다. 고령자 취업률은 25.1%로, 노인 4명 중 1명은 일터에 나가고 있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자, 일본 정부는 ‘평생 현역’을 내세우며 고령자 취업을 독려하고, 기업에도 채용을 유도해 왔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고령자 취업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특히 여성 노인들의 취업률 그래프는 뚜렷한 V자형을 보인다. 여성은 평균 수명과 초혼 나이차 등을 고려하면 배우자 사별 후에 나홀로 10년을 살아야 한다. 사카모토타카시(坂本貴志) 경제학자는 그의 저서 ‘진짜 정년후’에서 “수명 연장으로 노후 재원이 더 많이 필요해졌는데 버블경제 붕괴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중장년기의 월급은 정체되고 퇴직금도 줄어 노년 취업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40년 전인 1980년만 해도 60대 여성의 취업률은 43%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63%까지 높아졌다. 75세에도 현역인 여성 비율도 1980년 10.4%에서 2020년 16.8%까지 늘었다. 최근 일본 도쿄 여행을 다녀온 회사원 P씨는 “주차장이나 공사장 보행 안내원은 대부분 고령자이고, 식당이나 카페에도 백발의 서빙 직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일본에선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길면서도 연금 등 노후 보장이 충분치 않은 여성 노인들이 특히 적극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여성 노인들은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후지TV,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언론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일하는 6070 여성 노인들의 일자리에 대해 살펴봤다.

1️⃣일하는 이유는

길어진 노후에 연금만 갖고서는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은 수년째 연금액이 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삭감되기도 해서 은퇴 생활자들 사이에선 원성이 자자하다.

도쿄에 살고 있는 77세 여성은 “이렇게 내가 오래 살 줄은 몰랐다”면서 “한 달 연금이 6만엔(57만원)인데, 이걸로는 세금이나 집 관리비 내기에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택에서 티셔츠·바지 등 의류에 택을 붙이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다.

간병인으로 일한다는 74세 여성은 “근무시간은 하루 10시간이 기본인데 때론 입주도 해야 해서 일은 고된 편”이라면서 “하지만 연금(5만엔)으론 월세내기도 빠듯해 주5일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67세 여성도, 건물 청소를 하고 있는 81세 여성도 “일하기 싫지만 연금만으론 먹고 살 수가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거주 주택이 있으면서도 투잡을 뛰기도 한다. 66세 여성은 “낮에는 사무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청소를 한다”면서 “투잡을 뛰어서 한 달에 25만엔(약 239만원) 정도 버는데, 연금을 더하면 도쿄에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2️⃣몇살까지 일할까

71세 쿠도우씨는 도쿄 도심에 있는 리사이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트럭이 싣고 오는 쓰레기 중량을 기록하는 비교적 단순한 업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3일 일한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월 6만엔(57만원). 그는 용돈이 생기는 것도 좋지만, 신체 활력이 생겨 더 좋다고 말한다. “일을 시작하고 건강이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답니다. 80살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어요.”

도쿄 라면가게 여주인인 와타나베씨는 돼지 콜라겐 등 다수의 식재료를 사용해 13시간 걸려 만든다. 라면 가격은 1600엔으로 다소 비싸다./후지TV

도쿄 메구로구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라면가게를 꾸리고 있는 82세 여성 와타나베씨. 창업 55년인 노포(老舗)의 여주인이다. 원래 부부가 2인3각 체제로 운영했지만, 12년 전에 남편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1인 점포’가 됐다. 와타나베씨는 조리에서부터 서빙, 설거지까지 모두 혼자서 해낸다. 그는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 오타(大田)구의 맥도널드 지점에서 접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74세 야스이씨도 “여든에도 열심히 일하는 인생 선배를 보고 자극받았다”면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여든살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양판점인 노지마에서 일하고 있는 80대 여직원 구마다니씨./노지마

3️⃣늘어나는 일터

일본 기업들이 고령자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고령자 취업률을 높이는 요소다. 가전제품 판매점인 ‘노지마’는 2년 전 신규 채용 직원 대상에서 나이 조건을 아예 폐지했다. 80살라고 해도 일할 의사가 있고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적극 채용하는 것이다. 하루 5시간(오전 9시~오후 3시, 식사시간 있음), 주 4일 매장에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약 12만엔(약 115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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