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김일성이 제시한 구호 ‘일당백’ 60년 만에 다시 주목받다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3. 2. 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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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63년을 소환하는 이유

오는 2월 8일 북한의 ‘인민군 창건’ 75주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규모 열병식이 열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이틀 전인 2월 6일도 올해 북한에서는 주목받는 날입니다. 김일성이 이른바 ‘일당백’ 구호를 제시한 지 60주년이 되는 기념일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일당백 구호 제시 60주년’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당 제8차 대회와 중요당 회의들에서 천명된 군 건설 방향에 입각하여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과 ‘일당백’ 구호 제시 60돐이 되는 2023년을 공화국 무력의 정치 사상적 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해, 전쟁 동원 준비와 실전 능력 제고에서 전환을 일으키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당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 보도>

김일성의 ‘일당백’ 구호 제시일은 북한에서 당 창건일이나 군 창건일처럼 크게 기념해 온 날은 아니었습니다. 통일부에 문의해 본 결과, 2013년 일당백 구호 제시 50주년 기념일에 인민무력부의 기념보고회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그 이전인 2003년, 1993년 등에도 보고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대략 10년 단위로 기념보고회를 개최해 온 것입니다.
 
올해에도 일당백 구호 제시 60주년인 만큼 기념보고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일당백 구호 제시 기념일 이틀 뒤에 대규모 열병식이 열릴 예정이고,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일당백 구호 제시 60주년’을 강조한 상황이어서 보다 대규모 행사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당백’ 구호 기원은


한 사람이 백 명을 감당한다는 ‘일당백’은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씩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말이 뭐가 중요하다고 기념일까지 만든 것일까요.
 
일당백 구호 제시일의 기원은 1963년으로 올라갑니다. 김일성이 1963년 2월 6일 최전방 부대의 대덕산 초소를 찾았는데, 이때 군인들은 하나가 백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며 “인민군대의 구호는 일당백”이라고 제시했다는 것이 북한의 설명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신처럼 받드는 나라이다 보니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기념일까지 만든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북한이 일당백 구호 제시를 기념하는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합니다.
김일성이 1963년 2월 6일 대덕산 초소를 방문했을 때 모습

김일성이 일당백 구호를 제시했던 1960년대 초 북한은 나름의 안보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5.16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등장하며 반공 분위기가 강화됐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이 미국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미국의 한일관계 정상화 노력으로 외부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회주의의 양대 축인 중국과 소련 간 극심한 이념 분쟁은 북한의 군사 안보에까지 지장을 주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흐루쇼프의 평화공존에 반발하는 중국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던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자체적인 군사력 증강, 즉 ‘국방에서의 자위’를 실현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1962년 12월 10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노동당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 이 같은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김일성은 이 전원회의에서 “적으로부터 자기의 주권을 옹호하고 보위할 수 있는 자위적 방위력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사실상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회의에서는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한 손에 무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낫과 망치를 들고 조국을 보위하며 동시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인민 경제 발전에서 일부 제약을 받더라도 우선 국방력을 강화”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김정은이 2013년 제시했던 핵-경제 병진 노선의 원형인 경제-국방건설 병진 노선이 이때 등장한 것입니다. 회의에서는 또, ‘4대 군사노선’ 가운데 전군의 현대화를 제외한 전인민의 무장화, 전군의 간부화, 전국의 요새화가 제시됐습니다.
 
김일성의 대덕산 초소 방문과 일당백 구호 제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북한이 당면한 안보 위기 하에서 스스로의 힘에 의한 국방력 강화가 강조되는 가운데, 사상 무장을 기치로 한 사람이 백 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일당백의 구호가 인민군에게 제시된 것입니다.
 

60년 전과 달라진 것, 그대로인 것


김일성이 일당백 구호를 처음 제시한 1963년과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1963년은 중소 이념분쟁 하에서 북한이 중소와 밀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신냉전이라고 할 정도로 북중러의 밀착이 다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김여정이 지난달 27일 담화에서 “러시아 군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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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북한전문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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