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수천년 미라'의 비밀..."고대 이집트인, 장거리 무역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사후세계로 갔다가 다시 시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다시 돌아올 영혼을 위해 시신을 방부 처리해 미라로 만들어 온전히 보존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부 처리 물질이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재료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독일 루드비히 막시말리안대(LMU)와 튀빙겐대, 이집트 국립연구센터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이집트 무덤에서 찾은 도자기에 남은 잔류물을 분석해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드는 데 활용한 재료를 찾아내고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1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수천년 동안 미라가 보존될 수 있었던 비밀이 마침내 베일을 벗은 것이다. 방부 처리 물질 상당수가 이집트 외부에서 수입된 것으로 파악돼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은 지중해에서 멀리 떨어진 장거리 무역을 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 내부 장기 제거하고 건조, 방부처리해 미라 탄생
지금까지 알려진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부패를 막기 위해 내부 장기를 제거하는 과정과 시신을 건조하고 방부처리하는 과정으로 나뉜다. 먼저 나일강 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닦은 뒤 탐침을 코로 넣어 뇌를 끄집어 낸다. 이어 왼쪽 옆구리를 절개해 폐, 간, 위, 창자 등 내부장기를 제거한다. 심장은 사자의 신 '오시리스'에게 심판받을 때 필요하다고 여겨져 피만 빼고 그대로 뒀다.
이후 나일강에서 얻은 일종의 천연소금인 '나트론'을 시신에 채워 약 40일간 체액과 습기를 제거한다. 바짝 마른 시신은 흙이나 천을 이용해 생전 크기로 만든 뒤 식물에서 얻은 수액 등 방부처리 물질을 바른다.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아 완성하고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는 등 종교의식을 치르기까지 약 70일이 소요된다. 모두 세속의 존재를 신성한 존재로 바꾸는 작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신을 건조하고 방부처리하는 데 쓰인 구체적인 재료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쪽 고대 유적도시인 사카라의 미라 방부처리 작업장과 매장실을 조사하던 중 도자기 35점을 발견했다. 이는 기원전 664~525년 전에 미라를 제작하는 도구로활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는 이집트 제26대 왕조 시대로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하기 전 이집트를 통치한 마지막 시기였다.
각 도자기에는 '머리에 둘 것' '붕대, 방부처리할 것' 등 도자기 안에 담긴 물질을 활용하는 방법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연구팀은 도자기 안에 남아있는 잔류물을 분석하고 도자기에 새겨진 레시피와 비교해 물질의 사용처를 추적했다.
● 상당수 재료 수입에 의존..."고대 이집트인, 장거리 무역 했다"
연구팀은 혼합물을 분리해 분석하는 기술인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와 물질의 화학적 조성을 파악하는 기술인 '질량분석'을 이용해 방부처리 시 고대 이집트인들이 활용한 물질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머리를 방부처리하기 위해서는 엘레미 나무 수액, 피스타시아 나무 수액, 향나무·사이프러스 나무 부산물과 밀랍을 혼합한 물질을 섞어 사용했다.
또 도자기에 새겨진 제조법과 실제 물질을 비교한 결과 고대 이집트 언어 번역의 오류도 찾아낼 수 있었다. 일례로 고대 이집트 언어 중 '안티우(antiu)'는 향수의 원료로 사용되는 천연고무 수액인 '몰약'이나 '향'이라는 의미로 번역됐지만 향유 또는 타르와 지방의 혼합물로 해석해야 정확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 제작에 활용한 재료 중 상당수를 이집트 밖에서 수입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머리 방부 처리에 사용됐던 피스타시아 나무 수액은 현재 중동의 시리아 부근인 레반트에서, 엘레미 나무 수액은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서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지중해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곳과 장거리 무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필리프 슈토크하머 독일 튀빙겐대 선사고대학과 교수는 31일(현지시간) 진행된 온라인 브리핑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무역거래를 통해 미라를 방부처리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열대우림에서 수액을 구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당시 이집트는 타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이브라힘 이집트 국립연구센터 교수는 "글자가 새겨진 도자기를 발굴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연구 성과"라며 "미라를 만든 뒤 목관에 넣어 매장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시신을 박테리아나 곰팡이로부터 어떻게 보호했을 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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