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 받아도 갈 곳 없어"…청년 과학자들 현실 토로했다
"대학·기업·연구소 연구 외에 과학자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 유행하는 연구 주제가 달라져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육아와 연구를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4회 청년과학기술인 포럼'에 참석한 청년 과학자들은 졸업 후 진로에 관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날 행사는 미래 청년과학기술인을 위한 정책과 지원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직접 참석해 청년과학기술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년 과학자들은 연구현장 환경과 처우 개선 등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문제 외에도 대학원 졸업 후 진로 선택에 관한 고민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폭이 좁은 것은 물론 연구 트렌드가 자주 바뀌어 대학원 졸업 후 갈 곳이 없거나 장기적인 연구를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최동혁 KAIST 박사과정 연구원은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 유행하는 연구 주제가 달라져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입학할 때 유망 분야라고 해 선택했는데 금세 유행이 바뀌는 경우에 하나의 연구를 지속해 온 연구자들은 갈곳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가나 기업에서 지원하는 주제를 바꾸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다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초과학은 실제 사회가 요구하는 수요와 바로 접목되지 않는 면이 있어 취업하기 쉽지 않고 출연연의 경우에도 일자리가 한정적"이라며 "특히 산업계에서는 기초과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다양한 일자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한다"며 "여러 재능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관계부처와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안정성을 높여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배호 건국대 교수는 "신진과학자들이 창의적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려면 직업의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프로젝트 기반 지원보다는 그랜트 기반 지원 등 연구자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과학기술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최동혁 연구원은 "대학원생들을 위한 연구 교류의 장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며 "고독한 사색의 과정을 통해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스몰토크(잡담)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도 이에 동의하며 "국제학회에 가서 다양한 나라의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자신이 가진 고민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며 "문제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다가 교류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했다.
장혜리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원도 "멘토링 프로그램이 일회성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며 "또 대다수의 과학기술인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멘토들이 고경력자나 은퇴한 과학기술인인 경우가 많은데 청년과학기술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과학자들을 위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홍아름 경희대 교수는 "박사과정 연구원이자 엄마로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여학생휴게실에 수유실이 마련돼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며 "여성과학기술인들이 경력단절을 하지 않고 연구를 이어가려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혜리 연구원은 "출산·육아로 인해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육아와 연구를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며 "육아기의 여성 연구자들을 위한 단축근무 혹은 대체인력 채용과 관련된 지원들이 한국여성과학지원센터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제도 운영률이 낮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 개선과 함께 정책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