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과 대결 기대돼요”…귀화한 작은 거인 주천희

김창금 2023. 2.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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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여자부 다승 1위를 달리는 삼성생명의 주천희. KTTL 제공

작지만 강하다. 멘털도 강심장이다. 표정변화도 많지 않으니 상대방은 더 힘들다.

중국에서 귀화한 여자탁구 기대주 주천희(21·삼성생명)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실전에서도 그의 폭발력은 인상적이다. 이미 국내 최강으로 꼽히는 귀화 선수 전지희와 올 시즌 두 차례 만나 모두 이겼다. 2일 현재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개인 전적 14승4패로 다승 1위를 달리고 있고, 팀도 주천희의 힘을 바탕으로 선두다.

하지만 마음엔 미동조차 없다. 최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 체육관과 KTTL 경기장인 수원 T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항상 배우는 마음이다. 경기는 질 수도 있다. 내가 잘하는 것 다 하고 득점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채윤석 감독은 “멘털이 강한 편이다. 긴장을 덜 하면서 기술적 표현을 자신 있게 한다”고 거들었다.

키 1m64에 탄력을 갖춘 주천희는 2018년 삼성생명 입단 뒤 한 단계 더 성장한 사례다. 탁구계에서는 “파워풀하다” “백핸드, 포핸드 다 좋다” “강력한 스타일이다”라고 평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국내 무대 등장은 올 시즌에야 가능했다.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대한탁구협회 규정에 따라 3년의 경과 기간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이뤄진 대표 선발전에도 요건에서 한 달이 부족해 아예 출전할 수 없었다. 올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내년 파리올림픽에는 나갈 수가 없다. 주천희는 “협회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못 나가도 무명이라고 생각하고 감독님과 열심히 할 것이다. 나중에 더 잘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대를 했는데, 아쉬움은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그의 실력은 국내 톱 반열에 올라 있다. 전지희를 비롯해 최효주, 이은혜, 김하영 등 리그의 선배들과 맞붙어 대부분 이겼다. 서브의 타이밍 변화나 구질, 코스 공략 등은 예리하다. 상대 서브블 받고 난 뒤 들어오는 3구째 공을 강공으로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현재 국가대표 최강권인 신유빈과의 맞대결이 기대되는 이유다. 물론 신유빈과 공식 경기 전적은 없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파트너로 신유빈과 싸운 적이 있지만, 두 번 다 졌다. 주천희는 “지금은 실력이 많이 늘었다. 정식 시합에서 제대로 붙고 싶다”고 했다. 또 “잘 준비하면 이길 것 같다”라는 자신감도 표시했다. 채윤석 감독은 “둘이 대결하면 누가 이길지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천희는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 특히 경험을 쌓아야 한다. 더 많이 져야 하고, 지면서 이기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파이터 기질의 주천희는 지난달 30일 KTTL 리그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16살 신예 박가현에 일격을 당했다. 낯선 상대여서 공부가 돼 있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서브 변화 등 임기응변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랫동안 실전에 나서지 못한 경험부족의 한계로 볼 수 있다.

주천희가 2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 체육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금 기자

하지만 앞으로 각종 국내외 대회 출전이 가능한 만큼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맞수 관계’가 될 신유빈과의 대결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월 KTTL 1부 리그가 종료되면 인도 스타컨덴더와 싱가포르 스매시 대회가 예정돼 있는데, 둘이 이 대회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국제 오픈 대회 출전으로 포인트를 쌓아 세계 96위인 주천희는 국내 여자선수 톱6에 들어 초청을 받았다. 4월부터는 종별선수권 등 국내 대회에서 신유빈과의 최고 자리를 둘러싼 경쟁을 본격화할 것 같다.

석은미 해설위원 겸 국가대표 코치는 “일부러 약점을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다. 신유빈을 비롯해 김나영, 박가현 등 잠재력이 큰 선수들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자극을 주면 한국 여자탁구의 인기 회복과 재도약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는 “한국 1등이 아니라 세계 1등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 때문이다. 지고는 못사는 성격에다, 근력 훈련에도 많은 시간을 쓰는 모습부터 다르긴 다르다. 중국 귀화 선배들이 보여준 성실성도 교훈이 됐다.

물론 객지 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사는 부모님을 보고 싶을 땐 수시로 통화하며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면 부모를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에 주천희는 감정을 노출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그는 “이곳 훈련 환경이 너무 좋다. 부모님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볼 수 있다. 외로움은 없다”고 했다.

아직도 앳돼 보이는 그의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강한 의지가 차돌 같다.

용인/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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