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주장 황민경 “해란 언니가 우리한테 ‘형광좀비’래요”

남정훈 2023. 2. 3.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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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의 ‘캡틴’ 황민경(33)의 트레이드 마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코트에서 파이팅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에서 주로 리시브나 디그 등 수비에서 제 몫을 다 하며 ‘살림꾼’ 역할을 하는 그의 존재 덕분에 현대건설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현대건설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강성형 감독도 현역 시절 살림꾼형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하종화(전 현대캐피탈 감독), 임도헌(전 삼성화재 감독) 등 주 공격수들이 빛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강 감독이 아웃사이드 히터 한 자리를 공격력이 빛나는 정지윤과 공수 밸런스는 정지윤보다 낫지만, 공격력이 다소 아쉬운 고예림을 번갈아 활용하면서도 황민경은 확고부동한 주전으로 기용하는 이유다.

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의 2022~2023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GS칼텍스와의 맞대결도 황민경의 존재감이 빛난 경기였다.

이날 경기 전 현대건설 코칭스태프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파죽의 개막 15연승을 비롯해 시즌 시작 후 줄곧 선두를 지켰지만, 지난해 12월18일 페퍼저축은행전 이후 부상으로 이탈한 외국인 아포짓 스파이커 야스민의 공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라운드 첫 4경기를 내리 잡은 이후 막판 2경기(GS칼텍스, 도로공사)를 연패로 마감하면서 흥국생명과의 승점 차는 어느새 단 ‘3’으로 줄어들었다.

5라운드 첫 경기인 이날 강 감독에게 믿을 구석은 지난달 24일 이후 8일 간의 휴식 기간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야스민의 공백을 국내 선수들이 나눠서 메우다 보니 체력이 고갈됐다는 분석이었다.

8일 간의 휴식은 선수들에게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일시적인 해방구가 되어줬고,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현대건설은 국내 선수들끼리 똘똘 뭉쳐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2연패를 마감하며 승점 60(21승 4패) 고지에 오른 현대건설은 2위 흥국생명(승점 54) 승점 차를 6으로 벌리며 단독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여느 때와 똑같이 수비에서 제 몫을 다 해낸 황민경은 이날 공격에서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야스민의 부재 속에 전위 세 자리 때 오픈 공격도 소화해야 하는 황민경은 이날 11번의 오픈 공격에서는 한 포인트도 내지 못했다. 다만 퀵오픈(6/7)과 시간차(2/2) 등 세트플레이에서는 확실하게 책임져주며 블로킹 2개를 포함해 10득점을 올렸다.

경기 뒤 황연주(17점, 공격성공률 50%), 정지윤(12점, 공격성공률 42.5%)과 함께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황민경은 외국인 선수 없이 뛰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새 외국인 선수에 대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지금은 국내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해야죠”라며 주장의 남다른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어 “외국인 선수가 빨리 오면 좋겠지만, (황)연주 언니가 잘 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맏언니도 치켜세웠다. 이를 듣던 황연주는 “제발 빨리, 빨리 외국인 선수가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손사래 쳤다.

리베로 김연견과 팀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황민경은 수비에서 제 몫을 다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외국인 선수가 없기 때문에 우린 큰 공격으로 점수내긴 힘들다. 상대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낄만큼 물고 늘어져야 한다”라면서 “흥국생명의 (김)해란 언니가 우리더러 ‘너희는 형광좀비냐? 왜 죽을 것처럼 하면서 안 죽냐’라고 할 정도로 수비에서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다. 앞으로도 수비로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의 유니폼에 형광색이 들어간 것을 빗댄 표현이었다.

2008~09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도로공사의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황민경은 어느덧 프로 1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챔피언 결정전 우승 경험이 없다. 2015~16시즌까지 뛰었던 도로공사에선 2014~15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했으나 결국 2위로 올라온 IBK기업은행에 챔피언 우승컵을 내줬다. 2017~18시즌 FA로 현대건설에 넘어온 이후엔 더 불운했다. 2019~20시즌과 2021~22시즌 압도적인 전력을 뽐내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플레이오프 자체가 열리지 않아 챔피언 반지를 구경도 하지 못했다. 2019∼20시즌부터 주장을 맡아 올해로 어느덧 주장 4년차인 올 시즌, 과연 황민경은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이팅이 커질수록 그 가능성은 한층 더 커진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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