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는 아테네 민주주의 품에서 자랐다 [책&생각]

고명섭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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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웅 교수 편역 ‘소피스트 선집’
소피스트 16명 생애와 사상 복원
철학 비조 소크라테스 포함 눈길
프로타고라스 ‘민주주의 신봉자’

소피스트 단편 선집 1‧2
강철웅 엮어 옮김 l 아카넷 l 1권 3만8000원, 2권 3만2000원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피스트의 존재다. 소피스트는 말의 힘으로 작동하는 고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변론의 기술, 연설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주류 철학은 오랜 세월 소피스트를 말기술로 대중을 오도하는 지식 장사꾼으로 폄하했다. 소피스트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의 적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 강철웅 강릉원주대 교수가 엮어 옮긴 <소피스트 단편 선집>은 서양 주류 전통이 배제해온 소피스트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복원하는 저작이자 소피스트에 관한 오랜 통념을 바꾸는 책이다. 프로타고라스부터 크세니아데스까지 16명의 소피스트를 면밀히 추적해 고대 문헌에 나타난 이 사람들의 활동 양상과 저술 내용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선집이 소크라테스에게 한 챕터를 배정했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에게서 시작되는 서양 주류 철학의 비조에 해당하는 사람인데, 이 철학의 태두를 소피스트 그룹에 포함시켰다는 데서 이 선집의 과감한 역발상이 두드러진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로 분류될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시대에 벌써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거리의 철학자를 ‘소피스트’라고 호명하는 풍자극 <구름>을 쓴 바 있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로 묶일 수 있는 더 중요한 근거는 소피스트들이 말로써 설득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다. 말 곧 ‘로고스’(logos)야말로 소피스트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글이 아니라 말로 의견을 피력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사람이 소피스트다. 그렇게 보면 평생 한 줄도 쓰지 않고 오직 말만으로 살았던 소크라테스야말로 소피스트의 전형이다. 반면에 이 선집은 소피스트로 분류되던 이소크라테스를 제외했다. 이소크라테스는 말이 아니라 글로 승부한 사람이었다.

소피스트를 소피스트로 만들어주는 것은 로고스다. 이때의 로고스는 ‘토론’이고 ‘논변’이며, 논변을 뒷받침하는 ‘근거’이고 근거를 찾는 ‘이성’이다. 근거를 찾아 들어가 논리적으로 따져 묻는 이성적 사유 능력이 로고스다. 이 선집은 소피스트들이 논쟁에서 승리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논변이 궤변에 가까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음도 분명히 지적한다. 이를테면, “강자의 이익이 정의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난타당하는 트라시마코스가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전체로 보면 소피스트들은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말의 힘을 숙고하고 성찰하는 면모도 보여주었다. 이 선집은 이런 사실에 주목해 소피스트들을 일종의 철학자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견해를 내보인다.

그런 철학자다운 면모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최초의 소피스트로 꼽히는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90~420)다. 프로타고라스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소피스트로서 유일하게 들어간 사람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는 아테네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프로타고라스가 얼마나 인기를 누리며 추종자를 거느렸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앞쪽 주랑을 거닐고 있는 프로타고라스를 보게 됐지요. 그분 바로 뒤로 두 무리가 따르며 함께 거닐고 있었는데 (…) 프로타고라스가 가는 길에 한순간이라도 방해가 될까 봐 조심들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최초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는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로타고라스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데가 많다.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와서 발표한 첫 저작은 <신들에 관하여>였는데, 이 저작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들에 관해서 나는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걸 가로막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가지론을 주장한 것을 문제로 삼아 아테네인들은 프로타고라스에게 추방 선고를 내리고 프로타고라스 책을 모아 아고라에서 불태웠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를 떠나 시칠리아로 가던 중 배가 난파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소크라테스가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은 것과 닮은꼴이다. 이 첫 소피스트가 지식 장사꾼으로서 대중한테 영합하는 활동만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모든 사물의 척도는 인간이다”라는 명제를 제출한 사람으로 철학사에 길이 남았다. 이때 척도(metron)라는 것은 ‘판단 기준’(kriterion)을 뜻한다. 인간이 만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렇게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결국 진리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뜻이 될 터다. 그리하여 프로타고라스는 ‘주관적 상대주의’의 대명사가 됐다. 이런 평가를 처음으로 내놓은 사람이 플라톤이었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의 발언을 두루 살펴보면 뉘앙스가 조금 달라진다. 프로타고라스 말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사물이 드러나는 방식이 각각 다르다’는 데 있다. 동시에 프로타고라스는 그렇게 드러난 것이 모두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어떤 것은 더 유용하고 어떤 것은 덜 유용하다. 이를테면 곡물 재배법은 농부가 더 잘 알고 질병 치료법은 의사가 더 잘 안다. 철학자가 할 일은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보는 눈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타고라스의 ‘인간 척도론’도 ‘평등한 세상에서 저마다 자기가 본 것을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의견을 넘어 더 유용한 것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프로타고라스에게 민주주의 신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끈 페리클레스의 친구였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는 프로타고라스의 연설이 통째로 들어 있는데, 여기서 프로타고라스는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시켜 인간들에게 염치와 정의를 나누어주었다’는 신화를 끌어들인다. 그 신화에서 제우스는 말한다. “염치와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시오. 다른 기술들처럼 소수만이 그것을 나눠 갖게 되면 국가가 생겨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염치와 정의를 나눠 가질 능력이 없는 사람은 ‘국가의 병’으로 여겨 죽이는 것을 내게서 나온 법으로 삼으시오.” 염치와 정의를 배반하는 자는 나라를 병들게 하므로 죽임당해 마땅하다. 이 발언에서 프로타고라스가 지녔던 민주주의 신념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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