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권’ 든 도시 여행자를 위한 책방 [책&생각]

한겨레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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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햇살이 책방으로 들어와 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지난해 봄, 책방을 열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 오후의 공기를 함께 즐기고 나눌 분이 많아졌다.

그림책 테라피에 참여했던 인연들이 북클럽을 만들고, 자수에 진심인 손님 덕분에 책방의 책여권 선물(스탬프 10개마다 선물을 드린다)이 더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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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우리 책방은요 │ 뜻밖의여행

뜻밖의여행 입구.

오후 2시. 햇살이 책방으로 들어와 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긴 햇살이 구석구석을 돌며 책과 인사하는 시간. 아침의 책 냄새가 종이 날것의 인기척이라면, 이때의 책 냄새는 글들이 서로 말을 걸어 웅성웅성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 느낌이다. 깊고 기분 좋은 책 냄새. 지난해 봄, 책방을 열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 오후의 공기를 함께 즐기고 나눌 분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에도 책방이 생겼다!”며 하루가 멀다고 들르는 분들부터 카페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그야말로 ‘뜻밖의’ 책방을 발견해낸 기쁨에 지인을 데리고 와 자랑하는 분들까지, 우리 책방은 지금 이웃과 느슨하고도 끈끈한 연대를 맺는 중이다.

책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 가운데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조금 더 각별하게 만들어주는 책의 힘이다. 일개미의 하루부터 수천억개의 별이 모인 우리 은하까지, 길바닥 그림자부터 나무 꼭대기의 잎줄기까지, 사랑 시부터 인류 역사의 강줄기까지… 책으로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풍성해지는가!

그 여행길이 조금 더 재밌어지라고 ‘책여권’을 만들어드리고 있는데, 뜨거운 반응 속에 곧 2쇄를 찍어야 할 것 같다. 책을 구입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고 책 제목과 날짜를 적는데, 그날의 짧은 느낌을 기록하는 분들도 계시다. ‘나이 들수록 나도 주변도 정말 잘살아야 해서 선택’한 책이라고, ‘첫 아이 낳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고른’ 책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는 문장들에 가슴 뭉클해진다. 책을 사는 행위와 읽는 과정, 또 그 후의 기억까지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며 책여권을 사랑해주신다. 벌써 두번째 여권을 ‘발행’하신 분이 세명이다.

뜻밖의여행 현관.
뜻밖의여행 내부 모습.
뜻밖의여행에서 권윤덕 작가와의 만남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
뜻밖의여행 내부.
뜻밖의여행 책 진열대.

동네책방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애초에 적어 놓은 리스트가 매달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작년엔 세 차례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고, 안양의 아파트단지 관련 세미나와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을 재해석한 아트북 전시도 열었다. 그림책 테라피에 참여했던 인연들이 북클럽을 만들고, 자수에 진심인 손님 덕분에 책방의 책여권 선물(스탬프 10개마다 선물을 드린다)이 더 다채로워졌다. 마당이 펼쳐지니 강호의 고수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역시 그랬다. 책방엔 책만 있는 게 아니고, 손님만 머무는 게 아니다. 작은 것을 들여다볼 줄 알고, 호기심에 주저하지 않고, 혼자가 아님에 쾌재를 부르며 ‘살아가기’에 온 마음을 다하고 더하는 이들이 꽤 멋진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곳이 바로 동네책방이다.

얼마 전 누군가 ‘책방이 생겨서 더 완벽해진 동네가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햇병아리 책방지기에게 이보다 더 멋진 찬사가 있을까? 책으로 수많은 뜻밖의 여행을 꿈꿀 수 있어서, 할머니 책방지기를 꿈꿀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안양에 오시면, 채소가게와 어린이집 사이 작은 책방에 들르시라. 영화 <카모메 식당>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니, “소박해도 맛있는 걸 알아주는” 그대들로 책방은 더 찬란할 것이다.

안양/글·사진 이은형 뜻밖의여행 책방지기

뜻밖의여행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경수대로 713-1 (호계동) 1층
instagram.com/surprising.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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