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사람도 책도 나무처럼 자라고 [책&생각]

한겨레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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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일도 없던 1998년
첫 집 1년간 완성 뒤 낸 첫 책
‘나무처럼 자라는 집’
10년마다 증보 ‘자라는 책’
“집은 사는 곳이자 읽는 것”

나의 첫 책 │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본인 제공

우리말 표현에서는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글과 옷도 짓는다. 집은 세우고 쌓으며, 밥은 끓여서 익히고, 글은 어디엔가 새기고, 옷은 꿰어서 만드는데 왜 모두 ‘짓다’로 표현한 것일까. 아마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와 생각이나 마음을 담는 글을 비슷한 비중으로 본 것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집은 책이다. 가령 퇴계 이황의 생각을 문자로 읽어내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퇴계가 말년에 직접 설계하고 지은 도산서당에 가면 퇴계의 ‘경’(敬)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우암 송시열이 이야기하는 ‘회통’이라는 개념도 글보다는 그의 마지막 집인 남간정사에 가서 건축을 보고 두개의 물길이 만나는 연못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간다. 그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집을 짓는 일에 마음을 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자신들의 생각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통로로 여겼다. 집이란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읽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옷 빼고는 다 지으며 살고 있는 ‘부부 건축가’이다. 건물을 설계하는 일이나 글쓰기, 심지어는 아이를 키우는 일까지 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설계나 글쓰기나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끝말잇기를 하듯 받아서 이야기를 붙이고 다시 받아서 잔가지를 쳐내고 다듬어 집도 짓고 책도 엮어낸다. 각자의 말투와 각자의 표정이 섞여 하나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데, 결과를 보면 늘 신기하다. 흩어지는 구슬들을 모아 꿰다 보니 벌써 17권의 책을 엮었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2022년 증보판. 초판은 2002년에 출간됐다.

물론 건축가 둘이 쓰는 책이라면 집을 짓는 방법이나 재료에 대한 내용일 거라고 짐작하겠지만, 그보다 우리는 집을 지을 때의 생각들에 관해 쓰고 있다.(그래서 정보가 없다는 항의를 종종 받는다.) 집을 짓고 나면 그사이 오갔던 말들이나 생각들이 그냥 손에 잡은 물처럼 빠져나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서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아이엠에프(IMF) 직후인 1998년에 처음 사무실을 열어 간판도 없고 일도 없이 책상 몇 개 놓고 하염없이 앉아있다가 드디어 첫 일을 맡았다. 충주 외곽 상산리라는 마을에 지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집이었는데 1년 동안 그 일에 매달렸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기 위해 원래 있었던 집처럼 평범하고 소박하고 편안한 집을 짓자는 것이 목표였다. 음식도 평범한 맛을 내는 게 오히려 어려운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주인과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도면을 그리고 뼈대를 올리고 살을 입혔고, 책상에는 그림과 도면과 메모들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당시 사십 줄로 갓 들어선 가장과 식구들이 만날 새로운 삶과, 집과 건축에 대한 성찰들을 담아 평범한 집을 지은 이야기를 평범한 말들로 편하게 써서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첫 집을 완성하고 첫 책을 냈다. 제목은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었다. 집도 사람도 생각도 시간이 완성해간다는 생각에서 지었다.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 떠올린 이름이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윤보’라는 목수였다. 그는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며, 나중에는 독립운동하는 사람들도 도와준다. 윤보 목수처럼 둥근 마음으로 ‘지금 여기서’ 현재의 삶과 시간을 건축에 담고자 하는 게 우리의 초심이었다.

첫 책을 내고 이제 20년이 넘었다. 이 책은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돌아보게 하고 그사이 얼마만큼 거리가 생겼는지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나침반처럼 들여다보게 한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을 처음 낸 것이 2002년이었고, 10년이 흐른 2012년에 그사이 지은 집과 생각을 보태 100쪽 정도 늘어난 증보판을 냈다. 다시 10년이 흐른 2022년에 두번째 증보판을 펴냈으니 ‘나무처럼 자라는 책’이 되고 있다. 10년 후에도 다음 이야기를 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이 책은 우리가 짓는 첫 책이며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그리고 다음 책들

서울풍경화첩

사람은 시키지 않은 일을 할 때 제일 열심히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서울의 풍경들을 그렸다. 이 책은 그렇게 모인 그림들과 단상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던 토박이가 고향에 바치는 헌사 성격의 글이고, 크고 복잡하고 비인간적인 도시가 아닌 온도가 있고 냄새가 있는 그리고 우리를 키워준 땅으로서의 서울에 대한 아련한 느낌을 담았다. 피맛길이나 북아현동의 골목길 등 사라지는 풍경들에 대한 영정사진이기도 하다.

사문난적(2009)

작은 집 큰 생각

충청남도 금산에 20평 정도 되는 집을 지으며 우리 시대의 집이라는 것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다. 사고파는 재화로 가치가 전이되는 집, 내일의 행복을 위한 집, 그 집을 위해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지금, 바로 지금 행복한 삶, 그런 행복을 누릴 집을 꿈꿀 수는 없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설계해서 지은 집과 들어가서 살았던 집, 두 채의 ‘작은 집'을 통해 사람이 사는 곳이며 가족의 시간과 기억을 담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교보문고(2011)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우리가 건축을 할 때 길잡이가 되어주고 늘 많은 가르침을 주는, 우리의 옛집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반도의 독특한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고 공존하며 오래도록 사람들이 살면서 남겨온 흔적들, 그렇게 다듬어진 우리만의 독자적인 미감이나 기호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보편적인 차원의 지혜이다. 정지해 있으나 무척 강한 움직임이 있고, 경계가 없는 것 같지만 엄격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공간과 예술을 경험하며 받았던 감동과 감상을 적었다.

지식너머(2015)

공간을 탐하다

우리가 읽고 보고 듣고 느낀, 즉 아주 개인적인 지식과 건축이 만나는 이야기들이다. 건축은 가장 오래 남는 물질문명이며 문화이고 시대를 반영하는 척도이다. 피라미드나 에펠탑, 그런 대단한 건축뿐만 아니라, 시장통의 작은 가게, 소박한 정원, 익숙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그 안에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순간 마법처럼 우리에게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공간은 의미가 더해지고 점점 더 넓어져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그런 매혹의 장소와 기억을 담았다.

인물과사상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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