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창백한 분석보다 더 근본적인 것 [책&생각]

한겨레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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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추운 겨울이지만, 여기저기서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전쟁과 세계를 지정학적 현실로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작업들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현실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추인하는 결과를 빚는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이 전쟁을 냉정하고 창백한 분석이나 뉴스가 아닌 온기를 지닌 감정과 양심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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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세계의 여성 17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삶을 이야기하다

윤영호·윤지영 지음 l ㅁ(2022)

한창 추운 겨울이지만, 여기저기서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방은 냉골이다. 도시가스 요금이 걱정스러운 아내는 어린 딸아이의 방에만 온도를 넣어준다. 한국의 도시가스 요금이 오른 까닭은 저 멀리서 벌어진 전쟁 때문이다. 세계가 한창 코로나 펜데믹 위기에 처해 있던 지난 2022년 2월24일 현지시각 오전 5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전쟁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어쩌면 우리와 완전히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 무관할지도 모를 역사를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의 삶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전쟁 당사자여도 누군가는 전쟁을 외면”하고 살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가까이”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1953년 이래 한반도에서 태어난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휴전선이 그어져 있다. 우리가 늘 준전시 상태였거나 아니면 평화 시였더라도 전시에 준할 만큼 치열한 각축의 삶을 살아온 탓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전쟁에 대해 논평하고, 분석하는 수많은 이들의 말과 논리가 포탄처럼 오고 갔다. “누군가는 양측 모두 잘못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전쟁을 바라보지 말고 지정학의 운명을 보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또 그중 일부는 저 멀고 먼 땅에서 벌어진 이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미국과 서유럽의 관점으로 왜곡되어 러시아를 일방적인 침략자로 잘못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 저런 해설을 보면서 때로 그들에게 동조하고, 비판하며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이 전쟁을 일종의 지정학적 게임처럼 바라보거나 아니면 이 전쟁을 통해 우리가 잃을 것은 무엇이고, 얻을 것은 무엇인가 주판알을 튕기며 훈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년 남성들일까란 깨달음이었다. 전쟁과 세계를 지정학적 현실로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작업들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현실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추인하는 결과를 빚는다. 그 반대편에 침묵 당하는 이들, 전쟁의 희생자이자 피해자로서 여성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는 러-우 전쟁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이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 17명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난민이 된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난민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준 싱어송라이터, 저격수가 된 전직 기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반전운동가, 장애인, 국제정치 전문가, 예술가에 이르는 17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는 예상한 대로, 또 일부는 뻔하지 않아서 충격적이었다. 전쟁에 처했을 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전쟁의 현실은, 이처럼 동일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전쟁은 우리의 삶을, 현실을 파괴한다. 누군가에게 이 전쟁은 수치화된 사상자 통계, 전쟁의 여파로 한국이 거둬들일 막대한 무기수출의 산업적 이득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정과 양심의 문제가 된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이 전쟁을 냉정하고 창백한 분석이나 뉴스가 아닌 온기를 지닌 감정과 양심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우크라이나의 젊은 남성 작가 루브코 데레쉬는 이 전쟁에 대해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보인 첫번째 대응에서 도덕적 타락을 보았다며 “그 도덕적 침식이란 비즈니스 관점으로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말했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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