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철학 최전선 ‘사변적 실재론’ 읽기 [책&생각]

고명섭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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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전선의 철학사상 흐름으로 '신유물론'과 함께 '사변적 실재론'이 꼽힌다.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 쓴 <사변적 실재론 입문> 은 21세기를 이끄는 이 두 철학 흐름 가운데 사변적 실재론의 지도를 그려주는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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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실재론 입문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l 갈무리 l 2만8000원

21세기 최전선의 철학사상 흐름으로 ‘신유물론’과 함께 ‘사변적 실재론’이 꼽힌다. 이 두 조류는 모두 인간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사물의 실재성과 행위성을 강조한다. 철학 흐름의 이런 전환은 사물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이 인류세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판단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 쓴 <사변적 실재론 입문>은 21세기를 이끄는 이 두 철학 흐름 가운데 사변적 실재론의 지도를 그려주는 입문서다. 집필자가 사변적 실재론 운동의 한 지류를 대표하는 철학자라는 점에서 외부자가 쓰는 일반적 개론서들과 성격이 다르다. 사변적 실재론의 형성 내막을 가까이 들여다본 사람의 눈으로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사변적 실재론’으로 묶이는 네 명의 철학자가 합류하는 과정을 상세히 들려준다. 사변적 실재론이 철학 운동으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7년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에서 열린 워크숍이었다. 이 워크숍을 기획한 사람은 레이 브라시에였는데, 브라시에의 주도로 그레이엄 하먼과 이언 해밀턴 그랜트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캉탱 메야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40대였던 이 네 사람은 생각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뽑아 워크숍의 이름을 ‘사변적 실재론’이라고 지었다. 사변적 실재론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 위키미디어 코먼스

네 사람을 묶은 ‘사변적 실재론’이란 무엇인가? 먼저 ‘실재론’이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세계의 현존’을 믿는다. 인간의 생각과 무관하게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실재론은 칸트 철학 이후 독일 관념론을 거쳐 대륙철학의 중심으로 확립된 ‘상관주의’를 거부한다. 상관주의란 ‘세계는 인간 사유의 상관물이며 사유와 세계는 서로 별개로 볼 수 없다’는 관점이다. 요컨대, 세계는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과 무관하게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실재론은 여기에 반대해 세계가 인간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관점에 선다. 또 실재론을 수식하는 ‘사변적’이라는 말은 과거의 ‘상식적’ 실재론과는 달리 “세계가 우리의 직관에 반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실재 자체에 다가가려면 사변적 숙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변적 실재론의 주장이다.

이 책은 이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철학 운동을 탄생시킨 골드스미스 워크숍의 논의를 앞세우면서 대표자 네 사람의 핵심 주장, 곧 브라시에의 ‘프로메테우스주의’, 그랜트의 ‘생기론적 관념론’, 하먼의 ‘객체 지향 존재론’, 메야수의 ‘사변적 유물론’을 네 사람의 주요 저서를 살펴가며 비교적 명료하게 서술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변적 실재론’으로 묶이는 그랜트의 ‘생기론적 관념론’이 독일 관념철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셸링의 철학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셸링은 자연철학을 통해 일종의 ‘범신론’을 주창했는데, 이런 범신론적 자연철학이야말로 진정한 실재론이라고 그랜트는 본다. 관념론이 실재론으로 뒤집히는 역설적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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