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곳, 이렇게까지 아름다워야 한다 [책&생각]

한겨레 2023. 2.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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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청소년의 미래를 성공으로 이끈다." 미국에서 비롯하여 여러 나라로 번진 '청소년글쓰기센터'의 모토다.

2002년 몇몇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및 교습센터를 열기로 했다.

예컨대 '826 발렌시아:미션베이센터'는 숲, '826NYC'는 슈퍼히어로, '826LA:에코파크'는 시간여행, 영국 로더럼의 그림상회는 이야기를 테마로 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그에 맞는 기발한 상품을 진열하여 아이들과 합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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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상점처럼 꾸민 글쓰기 공간
‘826 내셔널’로 전세계에 퍼져
외계인 등 다양한 콘셉트로
꿈이 현실화하는 34곳 소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

국제 청소년 글쓰기 센터 연맹 지음, 김마림 옮김, 도서문화재단 씨앗 감수 l 미메시스 l 3만5000원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외계인을 위한 슈퍼마켓 ‘베라타미니스테리에트’에서 자원봉사자의 설명을 듣는 어린 방문객들. 왼쪽 구석 한 여성이 쓰고 있는 세 알 안경은 이 상점 베스트셀러다. 미메시스 제공

“글쓰기가 청소년의 미래를 성공으로 이끈다.” 미국에서 비롯하여 여러 나라로 번진 ‘청소년글쓰기센터’의 모토다.

변화는 대개 우연히 시작된다. 2002년 몇몇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및 교습센터를 열기로 했다. 건물을 빌린 곳이 발렌시아가 826번지, 소매 상업지구였다. 센터를 운영하려면 전면에서 무언가를 팔아야 했다. 그들의 선택은 배 모양 공간에 맞춤한 ‘해적상점’. 검은 수염, 수염 염색약, 금이빨, 배 밑바닥에 고인 물, 괴혈병 치료 약, 뱃멀미 약 등 가짜 상품 외에 나무의족, 조명용 돼지기름, 잠망경, 대걸레 등 해적선에서 썼음 직한 물건들을 소품으로 갖췄다.

점포를 위장한 글쓰기 센터는 대박이 났다. 학습 부진아들은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상점을 거쳐 공부방으로 스며들었고 빈 의자들은 모두 채워졌다. 자원봉사자들은 ‘호기심 천국’에서 한껏 휘저어진 아이들의 상상력을 글쓰기로 이어줬다. 이건 뭐지? 하고 점포에 들른 주민들은 센터의 취지를 듣고는 지갑을 열고 재능을 기부하기도 했다. 진열품이 다채로워지고 강사진이 짱짱해지면서 아이들은 부쩍 자랐고 상점에는 ‘깔쌈하게’ 제본한 아이들 문집들이 하나둘 매물로 추가됐다.

1호점 ‘826 발렌시아’ 성공에 따라 2008년에는 타지역 센터 설립을 돕기 위한 조직 ‘826 내셔널’이 떴다. 미국 전역에 ‘가맹점’(가맹비 안 받음) 8곳이 생겼다. 대개 이름은 ‘826+지역’. 작년 한해 동안 학생 5682명이 도움을 받았고 자원봉사자 719명이 적극 참여했다. 전 세계에 수십개 동조 그룹이 만들어졌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외계인을 위한 슈퍼마켓 ‘베라타미니스테리에트’. 밖에서 보면 여느 상점과 비슷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비현실적이고 경이로운 광경과 마주친다. 미메시스 제공
스웨덴 전 총리 스테판 뢰벤(왼쪽에서 두번째)이 교육센터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아이들이 베라타미니스테리에트 점포에 진열된 상품을 보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여기서 파는 대표 상품들은 다음과 같다. ➀초록선탠로션. 외계인용으로, 표면 세포막에 충분히 펴 바르면 오래 지속되는 멋진 초록색 피부를 얻을 수 있다. ➁병속에 든 진공. 이것은 완전한 진공 상태를 만들어 준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우리 은하계에서 아주 진귀하고 인기 있는 제품이다. ③캔 안에 든 진공.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즉각적으로 현실 세계와 연결된 듯한 감각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여행할 때 무중력 상태에서 청각기관 뒤쪽에 도포하면 된다 ④ 외계인 슈퍼마켓의 제품군. 토성 흙에서부터 로켓 연료까지 까다로운 외계인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은 대표적인 위장점포 34곳을 소개한다. 점포별로 공간의 콘셉트, 짜임새, 상품 등을 여러 장 사진으로 소개하고, 문답식 글로써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 운영방식, 지역사회와 관계 등을 설명한다. 가맹점들은 지역과 점주에 따라 특화됐을 뿐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 모양새는 같다. 예컨대 ‘826 발렌시아:미션베이센터’는 숲, ‘826NYC’는 슈퍼히어로, ‘826LA:에코파크’는 시간여행, 영국 로더럼의 그림상회는 이야기를 테마로 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그에 맞는 기발한 상품을 진열하여 아이들과 합체가 된다. 826 콘셉트는 1호점을 기획하고 디자인한 데이브 에거스의 말에 함축돼 있다.

“아이들 공간은 아이들을 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잘 견디도록 디자인된다. 삭막한 브루털리즘 양식의 네모난 학습 공간은 청소년들에게 자유롭다는 느낌보다 갇혀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감성을 키워주고 싶다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으로 주변을 채워야 한다. 영감과 자극을 주는 학습 환경은 아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그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공간의 진가는 만듦새보다 쓰임새에서 나온다. 센터에 들면 현재 우리가 사각 콘크리트 문명 한가운데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관습과 규율 속에서 딱딱해진 아이들이 다시 말랑말랑해지고 지역사회는 공동체성을 회복한다. 꿈이 현실화하는 공간이거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부록으로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만들어 운영하는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공간 8곳을 소개한다.

임종업 <토마토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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