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호두과자에 농업의 길을 묻다

이문수 2023. 2.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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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사를 쓸 때 취재한 사실 일부를 빼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천안시청 호두과자점은 기자가 우리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다.

기존에 '천안 호두과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던 지역 유명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천안 호두' 과자에 농업의 길을 물었다면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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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사를 쓸 때 취재한 사실 일부를 빼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양질의 농특산물, 지역 명소와 맛집 등을 찾으면 다수의 독자에게 알리기보다는 취재수첩에만 고이 간직해 정보를 독점하고픈 유혹이다. 그 가운데 충남 천안시청을 손꼽을 만하다.

회색빛 네모반듯한 청사에 볼 게 뭐가 있냐고? 외국산 호두가 아닌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광덕호두(천안 동남구 광덕면에서 나는 호두)를 쓰는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는 점포가 있다. 거친 식감의 우리 밀, 달곰하고 부드러운 국산 팥소, 진하고 고소한 호두기름을 덧칠해 혀를 즐겁게 한다. 천안시청 호두과자점은 기자가 우리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이다.

그런데 시청에 과자점이 들어선 게 희한하다. 취재하다 한 공무원으로부터 사연을 들었다. 2010년대 초반 시청이 발칵 뒤집혔다. 몇몇 언론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천안 호두과자에 외국산 호두가 들어간다’며 성토했다. 시청이 부랴부랴 ‘천안 호두과자’의 명맥을 잇겠다며 천안산 호두로 과자를 굽는 상점을 운영하게 됐다.

모두가 반길 것 같았던 시청 과자점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낳았다. 기존에 ‘천안 호두과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던 지역 유명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수입 호두를 쓰는 업체가 시청에 손님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을 터. 그래서 웃지 못할 절충안이 나왔다.

‘시청은 하루에 호두 24개들이 선물용 세트 50개만 취급할 것!’

국산 농산물로 좋은 과자를 생산하겠다는데 이렇게 눈치를 볼 일인가. 이런 상황에 광덕면 내 120여 호두농가가 뿔났다.

“천안산 호두가 안 들어갔는데 ‘천안 호두과자’라 부를 수 있나요? 과자업체가 우리 호두를 안 쓰겠다니 별수 없지. 직접 호두과자를 만들 수밖에요.”

농가들은 힘을 합쳐 지난해 11월 광덕면에 ‘천안 호두과자 판매장’을 열었다. 팥 대신 직접 생산한 단호박을 넣어 새로운 호두과자를 내놨다. 건강하고 색다른 주전부리로 소문이 나면서 천안은 물론 인근 공주에서도 손님이 찾아오고 있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농민신문>에 ‘소비자물가에 신경 쓰느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고, 농민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 이야기로 도배된다. 농사짓지 않는 기자인데도 분노를 넘어 이제는 암담한 현실에 무뎌지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천안 호두’ 과자에 농업의 길을 물었다면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른다. “농민을 외면하는 정부만 믿을 수 없다. 이젠 농민끼리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나아가 제값 주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사려는 소비자와 손을 잡아야 한다!”

이문수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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