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57. 슬픈 사연의 화가 이야기2

강주영 2023. 2.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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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고독한 이들의 어깨엔 온기도 강하게 느껴져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 봄꽃·연서 전달
일곱살 전후로 부모 잃고 떠돌이가 돼
어른될 때까지 글을 읽고 쓸줄 몰랐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쓰기 위해 익혀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일 수 있지만
그의 그림들은 무척 밝고 아름다워
▲ 이광택 작, 아름다움 탐구 드로잉 (2021)


2021년 ‘미나리’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씨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배우가 연기를 가장 잘할 때는 돈이 없을 때예요.” 그리고 발레리나 이사도라 덩컨도 그녀의 자서전에서 젊은 날의 가난에 대해 거의 똑같은 얘기를 한다. “가난이야말로 내 창조의 근원이었다.” 흔히 얘기하듯 어려운 살림살이는 사람을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인간의 창의적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행복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좌절과 허무, 결핍과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감은 존재의 영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맑은 순수성이 보존되며 그로 인해 예술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불행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세계와 인생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고 존재에 대해 고뇌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결과로 정신세계가 오롯하게 담긴 예술품을 창작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화가가 아니어서 조금 조심스러웠지만, 제비꽃에 얽힌 화가의 사랑 이야기는 전해드리고 싶었다. 비록 고양이 죽 쑤어줄 것 없고 생쥐 볼가심할 것 하나 없는, 빈궁한 삶이었으나 이상하게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마치 봄바람처럼 착하고 고귀하게 살아서였을까. 환한 축복의 아우라가 만져지는 듯하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애정이 창으로 달아나고 궁핍은 부부간의 사랑까지 갉아먹는다고 했거늘, 그게 늘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의 주인공은 조반니 세간티니(1858∼

1899)이다.

이 화가는 봄만 되면 연인에게 제비꽃을 보내며 이런 편지를 쓰고는 했다.

“눈에 잘 안 띄는 꽃이지만 받으세요. 내 사랑의 상징입니다. 봄이 와도 당신에게 제비꽃이 배달되지 않는다면, 아마 그건 내가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세간티니는 일곱 명의 연인들-비공식적인 만남까지 하면 부지기수-을 갈아치운 피카소와는 정반대의 화가였다. 그는 오직 한 여인만을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평생토록 사랑했다.

세간티니는 떠돌이가 되던 일곱 살 전후에 부모를 차례로 잃었다. 그가 태어나던 해에 형이 화재로 인해 숨지고 그 일로 어머니는 쇠약한 몸에 우울증까지 겹쳐 결국 그가 여섯 살 때 죽고 만다. 또한 그를 이복 누나에게 잠시 맡기면서 봄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던 아버지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듬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겨울만 잘 견디면 봄이 오고, 아버지도 오리라 믿었던 어린 세간티니에게 그 봄은 얼마나 아픈 상처를 주었을까? 제비꽃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죽었기 때문이라던 그의 말속엔 그만큼 어린 시절 겪은 아픔과 트라우마가 녹아 있다. 그에게 봄은 하루하루 기다리며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였다.

어른이 될 때까지 세간티니는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글쓰기를 제대로 익혔는데,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여인에게 멋진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정월 눈발 날리듯 불행으로만 점철된 인생이건만, 세간티니의 그림은 칙칙하고 어둡지 않다. 아니 무척 밝고 아름답다. 물론 산골에 사는 가난하고 고독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어깨엔 삶의 무게로 인한 고단함과 쓸쓸함이 엿보이지만, 동시에 인간다운 온기도 강하게 느껴진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초라하고 하잘것없는 인생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가난 속에서 누리는 평화와 대자연과의 교류를 통한 정서적 풍요로움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여유로움과 깊은 사색, 초탈과 평온 같은 미덕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글을 마치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다.

최고의 예술은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 그림은 드로잉 공부로 그려본 작품이다. 지금부터 170년 전의 프랑스 흑백사진을 보고 그린 것인데, 인물과 색채는 내가 임의로 넣었음을 밝힌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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