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정해수욕장 두 번 울리는 서천화력발전소

김석모 기자 2023. 2. 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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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들어서며 폐쇄됐다가 발전소 철거 못해 복원 ‘스톱’

지난 1일 오전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마량포해돋이마을. 마을 뒤편 언덕 위에 오르자 반대쪽으로 옛 서천화력발전소 1·2호기 부지가 펼쳐졌다. 화력발전소의 상징과 같은 굴뚝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높이 56m에 달하는 직육면체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서천군청 관계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해수욕장 복원 사업이 발전소 건물 한 동을 철거하지 못해 중단됐다”고 했다.

옛 서천화력발전소 부지에서 추진되던 해수욕장 복원 사업이 지난해 7월 이후 무기한 중단됐다. 발전소 건물 철거 과정에서 일어난 폭발음과 먼지 등으로 민원이 발생해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여름철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정해수욕장(위 사진)을 찾은 피서객들. 2일 동백정해수욕장이 있던 옛 서천화력발전소 부지(아래)에는 건물 한 동만 남아있다. 발전소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음이 법적 기준치를 넘어 민원이 잇따르자, 서천군이 ‘발파 중지’ 행정명령을 내려 공사가 중단됐다. /서천군·신현종 기자

2일 서천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6월 한국중부발전 서천화력본부는 옛 서천화력발전소 부지에 ‘동백정해수욕장’을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한때 충남의 3대 해수욕장이라던 동백정해수욕장은 서천화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면서 1978년 사라졌다. 인근에 1530년 지은 정자 ‘동백정’이 있다. 동백정 주변엔 수령이 500년 넘는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69호)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동백정해수욕장은 동백나무 숲과 서해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던 곳이다. 동백정해수욕장을 없앤 자리에 1983년 완공된 서천화력발전소는 34년 동안 주로 수도권과 충청권 등지에 산업·생활용 전기를 공급해 왔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탈석탄 정책’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조기 폐쇄되면서 서천화력발전소 1·2호기는 2017년 문을 닫았다.

이후 한국중부발전 서천화력본부는 서천군, 주민들과 협의한 끝에 철거할 발전소 부지에 동백정해수욕장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중부발전이 사업비 648억원을 전액부담하기로 했다. 해수욕장 복원 면적은 서천화력발전소 1·2호기 부지(27만2306㎡)의 41.7%(11만3500㎡)다. 발전소가 있던 터의 흙을 걷어내고 모래를 깔아 길이 573m, 폭 150m에 이르는 해변을 만들기로 했다. 또 생태 공원, 주차장, 집라인 등을 설치하고, 민간 사업자의 투자를 받아 리조트 등을 지어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6월까지 동백정해수욕장 복원을 마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화력발전소 철거 작업이 중단돼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서천군이 발파 공법을 중지하라는 행령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화력발전소 대형 건물에 폭약을 설치해 발파하는 방식으로 철거가 이뤄졌는데, 인근 주민들이 폭발음과 진동, 비산 먼지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을 서천군에 잇따라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주민 박모(68)씨는 “발파 시 굉음과 함께 집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며 “발파 충격에 집 외벽과 화장실 타일이 갈라졌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서천군은 주민 민원이 잇따르자, 지난해 4~6월 진행한 4차례 발파 작업 때 소음을 측정했다. 4차례 측정에서 모두 소음·진동 관리법상 소음 기준인 80dB(데시벨)을 넘어선 100dB 이상 소음이 발생했다. 이에 서천군은 발파 공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서천군 환경보호과 관계자는 “기준을 초과한 소음을 줄이도록 발전소 측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해결되지 않아 발파가 아닌 중장비를 이용해 건물을 철거할 것을 발전소 측에 행정명령한 상태”라고 했다.

문제는 서천화력본부 측이 철거 공법을 바꾸기 어려운 처지라는 점이다. 섣불리 중장비를 투입하는 공법으로 바꿀 경우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한 동은 바닥 면적 7072㎡에 높이 56m 규모다. 철골 구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발파 철거가 쉽도록 일부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거하는 등 취약화 작업이 80% 정도 진행됐다.

서천화력본부는 “중장비를 투입하는 기계식 철거 공법으로 변경을 검토했지만 감리 업체가 안전사고를 우려해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발파를 위한 사전 작업이 대부분 진행돼 건물 안전성이 취약해져 내부나 상부에 중장비와 인력을 투입할 경우 건물 붕괴 위험이 크다는 입장이다.

서천화력본부 관계자는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발파 방식으로 철거가 진행되도록 서천군, 주민들과 잘 협의해 해수욕장 복원 공사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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