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서 훔친 장물 안 돌려준 10년, 피해 입은 쪽은 우리

조선일보 2023. 2. 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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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찰에서 2012년 도난당해 한국에 반입된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600여 년 전 이 불상을 소유했던 국내 사찰에 소유권이 있다고 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어떤 이유로 불상이 일본 사찰에 갔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훔친 물건은 도난당한 소유자에게 일단 돌려줘야 한다. 만약 약탈당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증명한 뒤 국제법이 정한 약탈 문화재 환수 절차에 따라 소유권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먼저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대법원 확정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일본 사찰에서 불상을 훔친 사람들은 전과 합계 56범, 평균 나이 62세인 한국인 전문 절도단 4명이었다. 폭행 등 전과 18범의 조폭 출신이 훔친 불상을 처분하는 장물아비 역할을 맡았다. 이전까지 이들은 문화재만이 아니라 기계, 담배 등 돈 되는 물건은 가리지 않고 훔쳤다. 이들이 쓰시마 원정에 나선 것은 문화재 가치에 비해 현지의 관리가 느슨하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법적 범죄 이익을 노렸을 뿐 문화재 환수와는 관계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장물을 한국 법원은 “약탈당했을지 모른다”며 10년 이상 붙들고 있다.

일본 사찰에 있다가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문화재청 제공

국내 사찰의 주장대로 이 불상이 600여 년 전 왜구에 의해 약탈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항소심 법원도 “약탈 정황과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추정일 뿐 입증이 안 되고 있다. 6년 전 문화재청도 “개연성은 있으나 확증이 없다”고 했다. 약탈이 사실이라고 해도 500~600여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내세워 현 소유주의 소유권을 빼앗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항소심 법원은 “도난당하기 전까지 일본 사찰이 60년간 불상을 점유해 취득시효 20년이 완성된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했다. 한국 땅에서 만들어진 불상을 돌려보내는 것이 아쉽고 불교계의 반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온 세상이 지켜보는데 절도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사실 이 문제는 법을 떠나 상식으로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한국 사찰이 “불상이 일본에 간 경위가 밝혀질 때까지 돌려주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자 판사가 이를 받아들이는 일이 벌어졌다. 나아가 2017년 1심 판사는 600여 년 전 약탈 정황과 개연성만을 근거로 일본 사찰의 소유권을 부정했다.

지금 고려 불화의 대부분은 외국에 있다. 상당수는 미국에 있다. 그중 몇 점은 약탈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절도범이 미국에서 이 불화를 훔쳐와도 ‘한국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겠나. 상대가 일본이면 어떤 억지 판결을 해도 ‘애국’ 판사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건가. 법리가 아닌 포퓰리즘 판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법원에선 이런 판결이 한두 건이 아니다. 그사이 한일 문화 교류는 중단되다시피 했고 세계 문화계에서 한국은 장물조차 돌려주지 않는 나라로 평가받았다. 상처를 입고 피해를 본 것은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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