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어이없는 처신

조형래 산업부장 2023. 2. 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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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에
방통위, 세차례 압수수색 당하고
주무 국·과장 구속
경기방송 재허가 과정도 수사중
조직의 수장이라면
자신이 책임질 줄 알아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요즘 방송통신위원회는 말 그대로 난리 통이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의 점수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에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세 차례나 압수 수색을 당한 데 이어 실무 책임자인 국장과 과장이 잇따라 구속됐다. 방송·통신업계에 수퍼 ‘갑’으로 군림하는 방통위로서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검찰은 2019년 경기방송의 재허가 심사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압수 수색이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공무원이 조사받고 구속될지 알 수 없다.

2020년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간 진행된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을 보면 석연찮은 대목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와 방통위 안팎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TV조선에 대한 평가 점수는 19일 PC에 1차로 저장됐다가 심사 마지막 날인 20일 수정 후 다시 저장됐다고 한다. 3월 19일 밤, 담당 과장이 심사위원 일부와 술자리를 했고 검찰은 이 자리에서 TV조선 평가 점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처음에 입력한 TV조선 평가 점수는 문제의 공정성 평가에서도 기준점을 넘었는데, 수정 후엔 0.85점이 부족해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담당 과장은 내부에 ‘치맥’ 자리를 하긴 했지만 TV조선 점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통위에서 심사 업무를 담당했던 전·현직 공무원들은 “사업권 심사 때에는 식사도 심사위원 전원이 함께 해 불필요한 대화를 못 하게 한다. 담당 과장이 몇몇 사람과 따로 술을 먹은 것만으로 부적절한 처신이며, 심사 종료 하루 전인 19일 점수를 입력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대개는 마지막 날에 심사위원이 자신의 점수 표를 봉인해 제출하고 심사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심사 종료일에는 주무국장이 심사장인 경기도 양평의 코바코 연수원을 방문해 심사위원장을 따로 만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19년 경기방송 재허가 심사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공정언론국민연대에 따르면, 당시 경기방송은 심사 대상 방송국 146개 중 객관적인 지표인 계량 평가에서는 8위에 올랐지만 공정성 등 심사위원들이 주관이 개입되는 평가에서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해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이 방송사의 청와대 출입기자가 “현실 경제는 얼어붙었는데 대통령이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고, 그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쭙는다”고 질문한 게 괘씸죄에 걸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방통위가 경기방송에 조건부 재허가를 해주면서 단 부대 조건을 보면 ‘특정인을 경영에서 배제하고, 주요 주주나 특수 관계자가 아닌 사람을 사내 이사로 위촉하라’는 등 경영 개입을 시사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 한마디로 정부 말 안 듣는 경영진은 자르고 경영은 방통위가 할 테니, 대주주는 돈만 내라는 것이었다. 이 조치에 대해 경기방송은 “유례없는 언론 탄압으로 건실한 민영 방송사가 문을 닫게 됐다”는 호소문과 함께 폐업을 결정했다.

이 논란의 중심에 한상혁 위원장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방통위의 독립성과 임기 보장을 방패막이로 삼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압수 수색과 고위 간부 구속 외에도 전체 직원 200명 중에 40명이 검찰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고 있지만 기어이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태세다.

과거 이명박 정부 말기에 그 자리를 맡았던 이계철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임기를 1년 앞두고 사표를 냈다. 보수 정권이 재집권했는데도 새 정부 국정 철학에 맞는 사람이 방통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물러났다. 미국의 방통위 격인 FCC도 대통령이 바뀌면 전 정권에서 선임된 위원장이 퇴임하는 게 관례이다. 한상혁 위원장은 특정 정파의 대리인이 아니라 한 조직의 수장이다. 자신이 4년간 이끌어온 조직이 와해 수준에 왔다면 부하 직원들이 구속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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