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이야기[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입력 2023. 2. 3. 03:03 수정 2023. 2. 3. 03: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현대인에게 불평은 생활의 일부다. 나도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주 불평을 늘어놓는다. 특히 이미 정착된 것들의 불합리성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을 때 그렇다. 이 불만이 분한 마음과 맹목적인 분노로 이어지면 무척 해로워진다.

서울의 지하철은 그런 점에서 불평할 게 하나도 없는 시설이다. 도쿄의 지하철은 한 손으로 루빅큐브를 푸는 것 같고, 파리의 지하철은 혼잡해서 뚜껑을 닫는 순간 항상 미끄러져 들어가는 정어리들로 채워진 통조림 같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심지어 열차 내에서 맥주 마시는 게 허용되는 베를린 지하철은 비음주자에겐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세계 지하철 중에서도 으뜸은 뉴욕 지하철이다. 마치 오래된 감옥처럼 그 자체의 불문율과 모든 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970년대 도시의 파산 후 뉴욕의 지하철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일종의 사회적 실험이 되어버린 이 시설에 시민들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가끔 무척 따분할 때 어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들어가 본다. 이 계정에는 뉴욕 퀸스와 브루클린, 맨해튼, 롱아일랜드, 브롱크스를 연결하는 노선들에서 찍은 영상이 나오는데, 예를 들자면 반려동물을 데리고 열차에 탑승하는 승객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반려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게 아니라 집채만 한 뱀이나 앵무새, 거미, 메뚜기 같은 동물이다. 쥐로 말할 것 같으면 승강장에 한 무리의 쥐 가족이 나타나 열차에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모두 태연한 모습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외계인이나 식인종으로 변장한 사람들의 영상, 폭행이나 사망과 같이 지나친 장난을 꾸며내는 틱토커(‘틱톡’ 인플루언서)나 유튜버의 영상, ‘방귀학(Fartology)’ 따위의 제목이 적힌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진, 투명 비닐봉지에서 거대한 게 다리를 꺼내 먹으며 국물이 옷에 다 흘러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영상, 어깨에 사람 크기의 십자가를 지고 타는 사람이나 시동 걸린 오토바이를 타고 승차하는 사람들의 영상들이다.

나도 몇 년 전, 뉴욕의 지하철에서 황당한 장면을 목격한 일이 있다. 3월의 어느 목요일 오후 8시, 아내와 함께 23번가에서 브루클린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다. 야간 막차도 아니었다. 평범한 시간에, 변두리도 아닌 평범한 상업 지구를 지나고 있었다.

23번가 역에서 열차에 탑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연주였다.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원인을 발견했다. 다 쓴 기저귀 하나가 문 근처에 떨어져 구르고 있었다. 물론 주변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 문을 통해 탑승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다른 열차나 자리로 피해 앉았다. 당연했다. 몇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남자는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강줄기 같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아니고서는 저토록 고통에 찬 눈물을 흘릴 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색소폰 연주자는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을 연주했다. 이 모든 일이 열차 한 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뉴욕 지하철에는 총 6418대의 열차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지하철을 도시 주민들의 정신 건강을 측정하는 사회적 실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서 서울의 지하철 요금이 오른다는 소식에 마냥 불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예전에 서울의 지하철에서 보았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70대 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홍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자홍색 모자에 별 모양 렌즈의 선글라스도 쓰고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한국계 뉴요커인가?’ 그러나 그는 뉴욕의 ‘민폐’ 승객들보다 훨씬 건전한 방식으로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었다. 앞으로 안전성과 쾌적함을 더 높인다면 서울 지하철에 굳이 더 필요한 것은 아마 나처럼 따분한 승객들을 위한 소소한 개성과 재미 정도가 아닐까.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