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요즘 애들’이라는 굴레

황지윤 기자 2023. 2.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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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유일 20대 직원의 카톡 프사'라는 제목의 밈(meme)으로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만화 '짱구는 못말려'의 한 장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작년 12월 말부터 정부세종청사에 수습 사무관들이 배치됐다. 야박한 선배들은 이미 ‘○○부 3대 천왕’ 같은 이름을 붙이며 조용히 ‘요즘 애들’ 뒷담화를 하고 있다. “아니 글쎄, 요즘 사무관들이 어떤 줄 아세요?”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를 통과한 엘리트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태어난 Z세대 사무관들이 관가에 입성하자 주옥 같은 에피소드들이 괴담처럼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한 수습 사무관이 병가를 내면서 사유에 “과장님 잔소리”라고 적어냈다. 또 다른 수습 사무관은 선배의 카톡에 감히 “ㅇㅇ”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애교다. 모 과장이 수습 사무관에게 일을 시켰는데 “싫다”며 거절했다. 과장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단다. “나중에 제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것 같아서요.” 그 비상한 기개에 눌려 과장은 수습 사무관을 차마 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맹랑한 요즘 애들 이야기에 깔깔 웃었지만 전후 맥락이 지워진 불균형한 서사가 어쩐지 의심스럽다. 과장의 상습적인 폭언에 시달리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지른 SOS 신호는 아닐까. 선배가 얼마나 괴롭혔으면 직장인 만능 답변인 “넵!” 대신 “ㅇㅇ”이라고 했을까. 정말로 청문회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면? 참된 공직자라면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게 맞는다.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좇아 너도나도 민간으로 떠나는 시대에 공직에 뼈를 묻겠다는 결의를 오히려 높이 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최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는 ‘3요’ 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상사의 업무 지시에 요즘 애들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 되묻는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3요’의 의미와 이에 대한 모범 답안을 자료로 만들어 뿌린 기업도 있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3요’를 되바라진 요즘 애들의 도발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냥 하라”는 말만큼 공허한 지시가 없다. 어쩌면 ‘3요’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시키는 사람도 네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해서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조직의 문법을 거스르는 ‘3요’야말로 본질을 꿰뚫는, 역설적으로 조직에 꼭 필요한 질문이다.

요즘 애들이 만년 요즘 애들인 것도 아니다. 요즘 애들도 늙는다. 입사 2년 차쯤 문득 자신이 너무나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엉엉 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부터 차츰 많은 것이 편해졌다. 일이 쉬워진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직장에서는 ‘나’를 내세우기보다 ‘직장인 A’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쳤기 때문이다. “넵!”과 “ㅇㅇ” 양극단 사이의 “네..” 정도로 타협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조직의 문법을 익히고, 비대했던 자아가 깎여나가는 순간이 요즘 애들에게도 오기 마련이다.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할 기력도 쇠한다. 하지만 좌충우돌 애물단지 같았던 요즘 애들이 조용해질 때쯤, 또 새로운 요즘 애들이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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