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지금은 비록 죽었지만 새로운 백송 통해 부활의 꿈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通義洞)은 경복궁 바로 서쪽에 있는 동네이다. 통의동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北部) 의통방(義通坊)이었다가 갑오개혁 때 통의방으로 명칭이 바뀐 것에서 유래하였다. 통의동에는 흰소나뭇골, 매짓골, 띳골 따위의 마을이 있었고, 1955년에 백송동이라는 행정동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흰소나뭇골, 백송동은 모두 이 마을에 ‘흰 소나무’, 즉 백송(白松)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백송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나무껍질이 회백색을 나타내므로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 부른다.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도입되었으나, 번식력이 약해 그 수가 매우 적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이 많다. 통의동 백송은 인근을 지나는 자하문로와 효자로의 큰 길가가 아닌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조선시대에 어떤 집의 정원수로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었고, 백송을 품은 집이 누구의 집이었는지를 두고 두 가지 설이 제기되었다. 하나는 추사 김정희의 집이라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영조가 즉위하기 전에 살던 사저인 창의궁(彰義宮)이라는 설인데, 옛 지도 등 여러 자료로 미루어보아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이 일대는 조선시대 내내 왕족과 그 친척이 살던 지역이었다.
1971년의 사진에서는 주택가 한가운데 여러 갈래로 줄기를 뻗고 솟아 있는 백송을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모양이 아름다워 이미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고, 1962년에는 다시 우리 정부가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2021년 사진을 보면, 나무는 베어져 둥치만 남아 있고, 주변에 새로운 백송이 두 그루 자라고 있다. 1990년 7월 폭풍으로 나무가 쓰러져 고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3년에는 천연기념물 지정도 해제되었다. 백송은 다른 나무에 비해 약해서 더 귀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 통의동 백송 외에도 같은 해에 천연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서울 원효로 백송’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백송 다섯 그루가 말라 죽어 지정이 해제되었다. 살아 있는 천연기념물 백송을 보려면, 재동 헌법재판소나 조계사에 가면 된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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