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구현할 인력과 인프라가 없다

기자 2023. 2. 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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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공공고용 서비스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실업급여 중심의 소극적 고용정책을 취업지원 중심의 적극적 정책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구직자 관리를 강화하고,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기능을 고도화해 취업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안이다. 기업 고용 서비스 강화와 민간 고용 서비스 시장 활성화 역시 주요 과제로 포함됐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노동시장 정책을 고용 서비스와 직업훈련 등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공통적인 경향이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고용 서비스 지출은 매우 낮고, 양질의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고용 서비스를 강화해 구직자가 실업급여에 의존하는 기간을 줄이고, 조기에 노동시장에 복귀하도록 한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요컨대 이번 발표가 제시하는 고용 서비스 고도화 방향과 그 기반이 되는 문제 진단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 진단과 방향 제시가 정책의 내용과 성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고용 서비스를 검토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꼽는 첫 번째 문제는 고용 서비스 인력 등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 대비 공공고용 서비스 인력은 독일의 12분의 1, 프랑스의 11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인력이 많다고 꼭 양질의 고용 서비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정부 방안에는 형식적으로조차 인력 확대는 언급되지 않는다. 방안에 포함된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 활용이나 민간고용 서비스 활용 확대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인력 부족을 완화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디지털 기술은 고용 서비스 인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대체할 수는 없으며, 민간고용 서비스 역시 공공고용 서비스를 보충하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안 마련에 참여한 전문가와 관료들도 고용 서비스 인력과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을 텐데 공공부문 인력을 축소한다는 현 정부의 방향과 맞지 않기에 애써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의아하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과 인프라를 그대로 두고는 양질의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면, 이번 방안에서 남은 것은 엄격한 실업급여 수급자 관리다. 물론 부정수급 관리는 어떤 정책에서나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부족한 인력을 그대로 두고 부정수급 관리만 강조할 경우, 양질의 고용 서비스 제공은 제쳐놓고 수급자 관리에만 더 노력을 쏟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불경기로 노동시장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여 삭감에 역점을 둔 정책은 실업급여 수급자를 열악한 일자리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경우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사례가 늘어날 텐데, 실업급여에 대한 반복수급 제한은 이들을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지게 한다.

실업급여 의존 줄이고 복귀 지원
방향 옳으나 ‘개인 노력’에 무게
결국 수급자만 옥죄는 방안 될 것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관리 강화, 실업급여 하한선 조정, 반복수급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취업률을 높일 수 있다는 방안에선 구직자가 취업하지 못하는 까닭이 개인의 나태함에 있다는 정책당국의 인식도 엿보인다. 그러나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실업률은 낮고 저임금 고용 비율은 높다. 일자리를 잃은 구직자들이 저임금 일자리일지라도 빠르게 취업하는 경향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 물론 취업 의무를 태만히 하며 급여 수급에 안주하는 개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이 문제가 우선순위인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발표문에도 나오는 것처럼 노동시장 정책은 구직자와 고용 서비스 기관의 상호의무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상호의무라는 말 속엔 구직자의 취업 노력 의무만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가 구직자 취업을 위해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번 방안이 과연 구직자뿐 아니라 공공고용 서비스 기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도 충분히 담고 있는지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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