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 인간의 본성 탐구 발칙한 도발

김신성 2023. 2. 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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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개인전 ‘WE’
1억원 판매 논란 바나나 ‘코미디언’ 등
조각·설치·벽화·사진 작품 38점 전시
2011년 美 구겐하임전 이후 최대규모
리움미술관서 7월 16일까지 선보여
관람은 무료… 사전에 온라인 예약 필수
바나나 한 개가 테이프에 의지한 채 커다란 벽면 한가운데 붙어 있다. 2019년 12월 유망한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 등장한 작품 ‘코미디언’이다. ‘미술시장의 민낯을 드러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코미디언’(2019). 미술시장의 민낯을 드러낸 논란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리움미술관 제공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작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은 당시 1억원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 한 작가가 퍼포먼스를 통해 이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새 바나나로 교체되고 몰려든 인파 때문에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작품을 내린 갤러리의 선택까지, 거듭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미술시장을 조롱하면서 아트페어의 시장논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구매자는 바나나를 산 게 아니라 작가의 명성을 산 것일 테고, 바나나 또한 아무렇게나 쓱 붙이는 게 아니라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붙여 전시한다. 그러나 바나나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점차 썩어갈 운명인 바나나가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나요? 누구든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이토록 비싼 값에 팔린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2001). 소년 크기로 만들어진 히틀러.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참회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뒤에서 보면 교복을 단정히 입은 어린 학생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반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가가 얼굴을 확인해보면 모두가 알지만 언급조차 꺼리는 아돌프 히틀러(작품명 ‘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을 주도해 역사상 가장 잔혹한 악인으로 꼽히는 히틀러. 그는 생전에 참회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소년 크기로 만든 이 기묘한 모형을 통해 여전히 잔존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토록 유도한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학살과 혐오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유령과 같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참회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용서와 화합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진정 과거로부터 얻은 가르침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아홉 번째 시간’(1999). 권위와 억압, 신념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붉은 카펫 바닥에 운석을 맞은 교황이 쓰러져 있다(작품명 ‘아홉 번째 시간’). 눈을 질끈 감은 채 딱딱하게 굳어 있는 교황은 인조 조각에 불과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전하며 보는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끄집어낸다. 짓궂은 농담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까?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전시 장소와 시기, 맥락에 따라 다양한 평판을 낳고 있다. 사회적 관행과 질서, 권위와 억압, 신념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특유의 블랙유머로 삶의 폐부를 찌르며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전시는 처음이다. 미술관 로비와 M2 전시장 등 3개 층에서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을 선보인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전시 주제로 내건 ‘WE’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에서 경찰, 범죄자, 예술가 등 여러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하는 카텔란은 비관적이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카텔란판 인간희극’으로 관객들을 초대해 잔인한 삶에 대한 애잔한 공감을 부여한다.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소재인 억압, 불안, 권위, 종교, 사랑, 가족,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에 대한 ‘생각’은 작품을 둘러싼 토론을 주선하고 나아가 모종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시장 일부
카텔란은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악동이라 불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스스로를 희화화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현실을 제대로 뒤집어 보인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 대부분은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익숙한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이용한다. 나아가 익살스럽고 냉소적인 일화를 선보이면서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린다.

바닥에 나란히 놓인 아홉 개의 조각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묘사된 신체 부위는 없지만 천으로 덮은 시신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희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하게 된다. 미디어를 통해 참사 현장이나 죽음의 재현을 간접적으로 마주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건사고 중 한 장면을 펼쳐놓은 듯한 이 작품의 이름은 ‘모두’다. 아홉 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은 18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주세페 산 마르티노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처럼 숭고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마치 참혹한 현장임에도 구경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이밖에도 온통 검은 성조기에 페인트로 총격을 가한 듯한 작품은 잦은 총기사고로 시름이 깊은 미국 사회를 조명하고 거꾸로 선 경찰관들은 무기력한 공권력을 상징한다. 마치 참전용사 추모기념비처럼 제작된 검은 비석은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A매치 경기에서 패배했던 역대 기록을 새겨 런던 전시회에 맞춰 내놓았던 작품이다. 전시장 높은 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영화 ‘양철북’ 속 오스카는 자라기를 멈춘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르게 보길 바란다. 종종 북을 쳐 대며 우리의 주의를 일깨운다.

카텔란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진입했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 깨뜨리기에 일관했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는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사전 온라인 예약 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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