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갑질·여성 혐오… 필름에 새긴 ‘사회 고발장’
칸 비평가주간 폐막작 ‘다음 소희’
‘여고 실습생 극단적 선택’ 모티브
비인권적 업체 불공정 행위 조명
칸 여우주연상 수상 ‘성스러운 거미’
이란 여성 16명 연쇄살인 실화 그려
영화 공개 후 이란 정부 처벌 위협도
오는 8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다음 소희’와 이란 출신의 감독이 찍은 덴마크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동떨어진 나라에 이질적인 삶을 조명하지만, 그런 면에서 닮았다.
2일 영화계에 따르면, 다음 소희는 지난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의 폐막작으로 이미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영화는 판타지아국제영화제, 아미앵국제영화제, 도쿄필맥스영화제,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이 밖에도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 소개됐다.
성스러운 거미는 칸 영화제에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상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으며,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예비후보작(shortlist)에 올랐다.
중요한 건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받았냐가 아니라 수많은 국제 영화제가 두 영화에 주목한 이유다.
◆두 영화, 실화 바탕으로 사회 부조리 고발
다음 소희와 성스러운 거미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는 살해당한 여성이 늘어날수록 초조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더 많은 매춘 여성을 죽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미혼 여성 혼자라는 이유로 호텔 직원이 예약된 방을 내주지 않으려 하는 마슈하드에서 여성 저널리스트인 라히미가 거미를 쫓는 일은 쉽지 않다. 경찰은 10명이 넘는 희생자가 같은 수법으로 같은 장소에 버려졌음에도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라히미에게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현실 쉽게 바뀌지 않지만… 영화는 진실 기억의 도구
영화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지난달 31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 “촬영이 얼마 안 남은 때 여수에서 요트 바닥 따개비를 떼던 학생(실습생)이 죽었고,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되며 교육부 장관이 나와서 사과하고 심지어 대통령도 사과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또 잊히는 그런 과정을 보는 게 참담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이 언급한 사건은 2021년 10월 전남 여수시에서 특성화고교를 다니던 홍정운군(당시 17세)이 홀로 잠수작업을 하다 사망한 사건이다. 홍군은 원래 선박 운항 준비, 선박 정리, 접객 등의 업무를 하기로 돼 있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에 따르면, 실습생에게 위험한 작업을 시켜서는 안 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사과가 아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나의 영화가 세상을 단번에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이미 지난 일인데 왜 굳이 이 얘기를 끄집어냈을까. 정 감독은 “너무 늦었지만 이제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영화를 만들고 준비하는 와중에 그런 일(실습생의 죽음)이 생기니까 다음 소희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던 것도 같다”고 했다. 또 “몰랐던 아이, 몰랐던 죽음이 왜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지 이해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며 “소희라는 아이, 어쩌면 많은 소희들이 영화를 통해 살아갔으면 좋겠다. 관객의 마음에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을 테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막 안에서 소희의 아픔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고, 관객 경험이 스크린 밖으로 나올 때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소희’ 앞에 ‘다음’을 붙인 정 감독의 믿음인지도 모른다. 국적은 달라도 성스러운 거미를 연출한 알리 아바시 감독의 마음도 크게 다르진 않을 터다. (영화와는 무관하겠지만, 이란은 계속된 히잡 반대 시위에 지난해 말 도덕경찰의 활동을 중단했다.)
덧붙이자면, 두 영화의 닮은 점은 또 있다. 다음 소희와 성스러운 거미는 무거운 주제 의식을 평범하지 않은 서사 구조로 풀어낸다. 사건은 그리 쉽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예정된 죽음까지 바꾸진 못했지만, 다 볼 때까지 결말을 속단해선 안 된다. 다음 소희의 카메라 촬영 기법과 거미 살인자의 감정 변화에서 감독의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축의금은 10만원이지만…부의금은 “5만원이 적당”
- 빠짐없이 교회 나가던 아내, 교회男과 불륜
- 9초 동영상이 이재명 운명 바꿨다…“김문기와 골프사진? 조작됐다” vs “오늘 시장님과 골프
- 입 벌리고 쓰러진 82살 박지원…한 손으로 1m 담 넘은 이재명
- 회식 후 속옷 없이 온 남편 “배변 실수”→상간녀 딸에 알렸더니 “정신적 피해” 고소
- 일가족 9명 데리고 탈북했던 김이혁씨, 귀순 1년 만에 사고로 숨져
- “걔는 잤는데 좀 싱겁고”…정우성, ’오픈마인드‘ 추구한 과거 인터뷰
- 한국 여학생 평균 성 경험 연령 16세, 중고 여학생 9562명은 피임도 없이 성관계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