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 해상풍력, 30년내 2억가구 쓸 전기 만든다

안상현 기자 입력 2023. 2. 2. 21:00 수정 2023. 2. 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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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유럽의 경제 중심지로 뜨는 북해

덴마크 남서부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에스비에르(Esbjerg)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농장 몇 개가 전부인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다. 그러다 1967년 해저 유전(油田)이 발견되면서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의 요충지가 됐고, 1974년 항구가 건설되면서 덴마크의 수출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오스테드가 1991년 이곳에 11개 풍력 터빈으로 구성된 해상 풍력발전소 ‘빈데비’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이후 에스비에르는 또 한번 탈바꿈했다. 관련 산업 투자가 몰려들면서 에스비에르는 유럽을 대표하는 해상 풍력발전 단지이자 해상 풍력발전용 설비 제조 허브로 거듭났다. 오늘날 유럽에 설치된 해상 풍력발전 설비의 80% 이상이 에스비에르 항구에서 출하된다.

20세기 유전 발견으로 잭팟을 터뜨린 북해(北海)가 거친 바닷바람을 타고 유럽 최대 해상 풍력 기지로 변신하고 있다.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 북해 일대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앞바다에 풍력 터빈을 깔면서 조만간 이곳이 원자력이나 화력발전 등을 제치고 유럽 최대 전력 공급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풍부한 친환경 에너지원에 끌린 글로벌 기업들도 속속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덴마크의 미들그룬덴 해상 풍력발전 단지에 풍력터빈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해상 풍력 선도 국가인 덴마크가 지난 2000년 완공한 이 발전소는 코펜하겐 사용 전력의 3~4%를 공급한다. /스테이트 오브 그린

◇2040년엔 유럽 최대 전력 공급처

영국 요크셔 해안에서 89㎞ 떨어진 북해상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 해상 풍력발전소 혼시2(Hornsea 2)는 지난 2021년 12월 첫 전력 생산에 돌입했다. 오스테드가 만든 이 발전소에서는 165개의 대형 터빈이 북해 바람을 영국 140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어 공급한다. 발전 용량으로 치면 1.3GW 이상으로 웬만한 원자력발전소 발전 용량(1GW)보다 크다.

차세대 발전 방식인 부유식 해상 풍력 역시 북해에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터빈을 바다에 띄우는 부유식 해상 풍력은 해저 지반에 타워를 세울 필요가 없어 바람이 더 강한 먼바다에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피터헤드 해안에서 25㎞ 떨어진 바다에 설치된 하이윈드 스코틀랜드 풍력발전 단지는 2017년부터 전력 생산을 시작했고,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가 세운 시스템 용량 88MW 규모의 하이윈드 탐펜은 지난 11월부터 전력 생산을 시작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해와 국경을 맞댄 9국으로 이뤄진 ‘북해 에너지 협력체(NSEC)’는 지난해 9월 2050년까지 해상 풍력발전 용량을 지금(약 20GW)의 13배 이상인 260GW(기가와트)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260GW면 약 2억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심지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함께 지난 2020년 1월 NSEC를 탈퇴했던 영국도 2년 만인 지난달 복귀 선언을 하며 다시 합류했다.

이런 추세가 이어져 2040년쯤에는 해상 풍력이 유럽의 가장 큰 발전원이 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망하고 있다. 현재는 유럽의 전력 수요에서 풍력(육상+해상) 비율이 19.2%에 불과하다. 전체 풍력발전량(1821GWh)에서 해상 풍력의 비율도 19%(346GWh)에 그친다. 바다 위에 건설하는 만큼 해상 변전소나 해저 케이블 같은 전력 인프라를 추가로 설치해야 하고, 선박으로 설비를 운송·조립하는 등 초기 설치와 유지 보수에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면서 해상 풍력의 경제성이 급격히 개선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북해가 유럽 해상 풍력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천혜의 환경이 있다. 해면풍은 육상풍보다 풍량과 풍속, 지속성 측면에서 바람 질이 좋아 발전 효율을 육상 대비 두배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는데, 북해는 특히 세계에서 바람이 가장 센 지역 중 하나로 평균 풍속이 초속 10~11m(해상 풍력 적정 풍속은 초속 7m 이상)에 달하고 풍향도 일정하다. 수심도 통상 90m 이하로 낮은 데다 바닥도 부드러운 지질을 갖고 있어 발전 타워를 설치하기도 쉽다.

북해 지역 해상 풍력발전 단지

◇데이터센터도 북해로 모인다

북해가 이 일대 국가들의 주요 전력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른 산업도 끌어들이고 있다. 디지털 시대 핵심 산업 인프라로 떠오른 데이터센터가 대표적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저장하는 데이터센터는 주 7일 24시간 가동되는 만큼 ‘전기 먹는 하마’로 유명하다. IEA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20~320TWh(테라와트시)로 전 세계 최종 전력 수요의 0.9~1.3%를 차지했다. 웬만한 국가보다 많은 전력 소비량 탓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6%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거대 IT 기업들은 화석연료보다 발전 원가가 싸면서 탄소 배출이 없는 해상 풍력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북해로 진출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부터 모든 데이터센터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가동하고 있는 메타는 지난 2021년 말 해상 풍력 에너지로 운영되는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에스비에르 외곽에 212만㎡에 달하는 농지를 매입했다.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산업계 양대산맥인 아마존(AWS)과 MS(애저)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데이터센터를 열거나 추가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MS는 더 나아가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수중 서버를 운영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른바 ‘나틱 프로젝트’로 북해 바람으로 전력을 충당하면서 차가운 물로 서버 열기까지 식히는 차세대 서버다. 데이터 기업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북해 지역은 2010년대만 해도 해저 데이터 케이블이 5개에 불과했지만, 2020년 이후 13개의 새 케이블이 추가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풍부한 에너지는 산업을 끌어들인다”는 독일 경제사학자 니콜라스 볼프의 말을 인용하며 “북해가 앞으로 유럽에서 더 많은 경제 활동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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