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수개혁부터” vs “구조개혁 무게를”…연금개혁 백가쟁명에 ‘블랙홀’ 되나
野, 연금제도 구조개혁 필요성 강조
“기업납부↑, 법인세↓” “국부펀드” 주장도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민간자문위원회의 국민연금 개혁 초안 윤곽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에도 연금개혁 논의가 불붙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등 ‘모수개혁’ 방안이 먼저 유력하게 떠올랐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퇴직연금제도 등과의 관련성을 모두 고려한 ‘구조개혁’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개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백가쟁명식 논쟁이 촉발되면서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는 이르면 내주 중 개혁안 초안을 국회 연금특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자문위는 지난주 1박2일 마라톤 회의를 통해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로 올리는 안에는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은 현행 40%를 유지 하거나, 또는 50% 선으로 올리는 안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특위 논의 초점은 최근 2055년으로 시점이 앞당겨져 예측된 국민연금 기금 고갈시점을 ‘얼마나 늦추느냐’에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인구 노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 인플레이션 심화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면서 고갈 시기가 계속해서 앞당겨지는 것부터 일단 늦추자는 공감대에서다.
연금특위는 민간자문위 권고안을 바탕으로 이달부터 국민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오는 4월까지 개혁안 초안을 낸다는 계획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제도 틀은 그대로 둔 채 모수개혁을 위주로 논의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땜빵’ 개혁안이라는 비판도 적잖다. 민간자문위 역시 국민연금 외 기초연금·퇴직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 체계 조정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기본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또는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 논의의 국민적 파급력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다.
연금특위 관계자는 “이번에 만약 구조개혁을 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이라도 마련해 놓자는 것이 민간자문위 방향인 것 같다”며 “논의가 보험료율·소득대체율에 많이 집중돼 있지만 한쪽으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과의 관계 등을 향후 어떻게 세팅할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은 구조개혁 필요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세 차례 토론회를 열고 당의 연금개혁안 방향을 논의한 바 있다. 민주당에선 국민 노후 실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위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공적제도 강화, 퇴직연금 공적기금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연금특위 소속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모수개혁으로 초반 논의를 몰아가면 연금 문제를 풀 수 없다. (구조개혁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이거 하나(모수개혁)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국회에서 다수 야당 반대로 연금개혁이 되지 않는 것처럼 프레임을 잡고 공세하려는 정부여당의 ‘총선 전략’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내는 돈’과 ‘받는 돈’ 논의에 갇혀 국회에서 세게 정쟁화가 일 경우 이에 대한 부담은 야당으로 쏠릴 것이란 지적이다. 이 의원은 “1층 기초연금, 2층 국민연금, 3층 퇴직연금 구조 등을 잡고 연금개혁 목표를 노후 빈곤율을 떨어뜨리는 데 둬야지, 기금 고갈 시점만 늦추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며 “세대갈등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간자문위의 모수개혁 안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는 않은 채 후속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당내 공부모임 ‘국민공감’ 세미나에서 “연금특위도 공론화 과정을 위해 500명의 위원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절차를 거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국회 연금특위는 내달 중 국민여론수렴기구를 출범시켜 활동에 착수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전문성이 요구되고 민감한 이슈인 연금 문제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개혁 속도를 늦추려는 ‘꼼수’라는 비판도 있다.
여야 의원들 사이 연금개혁 해법에 대한 백가쟁명식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공감’ 세미나에 참석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기금 고갈 문제를 완화할 방안으로 고용주(기업)의 부담금을 올리는 대신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지금까지 논의는 근로자와 고용자가 (연금액을) 1대1로 내는 것을 전제로 했다면, 고착화된 이 틀을 깨서 근로주가 고용자보다 조금 더 내게 하는 대신 법인세 등 세금 감면을 통해 손해보지 않도록 해 주자는 것”이라며 “유럽 여러 나라들이 이런 방법으로 보험료를 납부한다. 실제로 스웨덴 사회부담금의 경우 근로자는 7%, 기업은 31.24%를 낸다”고 주장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국부펀드’를 주장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 자체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국부펀드를 도입, 해외 자산에 대한 적극 투자로 파이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KBC방송에 출연, “호주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이른바 ‘퓨처 펀드’를 구성해서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퇴직연금으로 노후자산 형성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중산층 형성에 큰 역할을 했던 재형저축은행의 또 다른 케이스, ‘21세기판 재형저축’을 만들어 보자는 것도 제 생각”이라고도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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