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수명에 장기 부족 극심… 인공장기 기술, 곧 38조원 산업된다
첨단바이오 인공장기, 어디까지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장기(臟器)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인공장기(artificial organs) 산업이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공장기란 인간의 장기를 대신할 수 있는 무기(無機)질 기계나 장치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유기(有機)질 조직을 말한다. 미국 리서치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18년 171억달러(약 21조2000억원) 규모였던 전 세계 인공장기 시장은 연평균 8.9%씩 성장해 2025년 309억달러(약 38조3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인류가 인공장기를 활용한 역사는 길다. 기원전 1000년쯤부터 사용한 틀니도 치아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인공장기의 하나로 볼 수 있고, 1967년에는 비닐·플라스틱 재질의 인공 심장 ‘자빅(Jarvik)-7′을 세계 최초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석고나 플라스틱류 같은 화학 소재를 기반으로 한 인공장기는 기능이나 활용 범위 등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유기체를 기반으로 실제 장기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인공장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돼지 심장이 사람 몸 속으로
유기체 기반의 인공장기 기술은 구현 방법에 따라 크게 ‘이종(異種) 장기’와 ‘세포 기반 장기’로 나뉜다. 이종 장기는 동물의 장기를 떼어내 사람에게 이식하는 기술로 현재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분야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 병원에서 돼지의 심장을 50대 남성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세계 최초로 이뤄지기도 했다.
장기이식용 동물로 돼지가 쓰인 것은 돼지가 생물·해부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과 돼지의 유전자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해 사람과 최대한 비슷하게 유전자를 편집한 이식용 돼지를 써야 한다. 메릴랜드 대학 병원에서 이뤄진 수술에서도 미국 바이오벤처인 리비비코어가 수술 목적으로 사육하고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를 사용했다. 이종 장기는 동물의 장기를 가져다 바로 활용할 수 있어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람의 몸에서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지난해 1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도 두 달여 만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사인은 돼지종에서 발견되는 돼지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CMV) 감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이종 장기는 섣불리 사람에게 이식할 경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원숭이 등 다른 동물에게 먼저 이식 실험을 한다.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기술로 돼지 심장과 신장을 이식한 원숭이의 생존 기간은 현재 각각 60일, 115일 정도다. 원숭이 대상 이식 실험이 시작된 2012년만 해도 심장과 신장 이식 시 생존 기간이 각각 10~20일, 12~25일에 불과했으나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10여 년 만에 생존 기간이 3~5배가량 늘었다. 학계에서는 보통 이종 이식 후 생존 기간이 100일을 넘기면 이후 안착률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돼지의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한 경우에는 8마리 중 5마리가 6개월 이상 정상 시력을 유지할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臟器
세포 기반 장기는 콜라겐이나 젤라틴처럼 인체·동물·식물 등에서 유래한 생체(生體) 재료에 줄기세포(모든 조직 세포로 분화할 능력을 지닌 세포)를 3차원 배양하고 분화·증식을 유도해 제작한다. 환자 세포를 이용한 맞춤형 장기 제작이 가능하고, 면역 거부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세포 기반 장기의 핵심 기술로는 ‘3D 바이오 프린팅’과 ‘오가노이드(organoid)’가 있다. 3D 바이오 프린팅은 세포가 들어있는 하이드로겔(바이오 잉크)을 프린터에 넣어 3차원 구조체를 출력하는 방식이다. 3D 프린터에 액상 플라스틱을 주입해 제품을 찍어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하이드로겔은 묵이나 젤리처럼 물을 많이 함유해 말랑말랑한 물질이다. 기술 개발 초기에는 주로 인체 모형 제작에 활용되다가 최근에는 인공 혈관·간·심장 등 이식용 장기를 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장조사 기관 BCC리서치는 전 세계 3D 바이오 프린팅 시장이 2019년 3억620만달러(약 3800억원)에서 2024년 14억달러(약 1조7200억원)로 5년 사이 4.6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초의 인공장기 프린팅 회사로 인공 혈관·간 등을 만드는 미국의 ‘오가노보’, 원숭이의 지방층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인공 혈관을 만드는 중국 ‘레보텍’ 등의 업체가 유명하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 배양하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조직 및 기관의 발생 과정을 몸 밖에서 유도해 만든 장기 유사체를 말한다. 현재 기술로는 대뇌, 위, 심장과 비슷한 세포체를 미니어처 크기로 만드는 수준이다. 2021년 세계 최초로 탄생한 심장 오가노이드의 크기는 2mm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는 이식용보다는 약물 실험용으로 주로 쓰이지만, 최근 들어 이식용으로 쓰기 위해 오가노이드 장기의 크기를 키우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장기 이식 대기자, 국내만 4만명 넘어
신장, 간(肝) 등 주요 장기에 큰 문제가 생긴 환자의 경우, 아무리 첨단 의술이 발전해도 상태를 호전시키려면 새 장기를 이식받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장기 이식이 절실한 중증 환자 수에 비해 장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4만1334명에 달한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만 2480명이나 된다. 미국에도 장기 이식 대기자가 10만5800명 있고(2021년 기준), 일평균 17명이 장기 이식 대기 중 사망한다. 가장 부족한 장기는 신장으로, 2021년 기준 미국에서 9만483명이 이식을 대기하고 있으나 실제 신장 이식이 이뤄진 경우는 2만4670건에 그쳤다. 장기 이식 대기자 대비 실제 이식 비율이 27.3%에 그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 이식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한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실제 인체 조직을 재현하는 인공장기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것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뉴욕대 그로스만 의학전문대학원의 아서 캐플란 의료윤리부문 책임자는 “낯선 이에게 장기를 기증해 줄 사람이 기적적으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활용 가능한 인공장기를 크게 늘려 장기 기증 캠페인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 근원적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공장기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다. 신약 테스트에 무수히 많은 동물을 희생시키는 대신 인공장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실험에 희생된 동물은 미국에서만 2000만마리이며, 미국·중국·일본·유럽·호주·캐나다를 합치면 무려 6740만마리에 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동물권 보호 여론이 커지면서 동물실험은 난관에 봉착했다”며 “학계와 제약 회사들은 인간 세포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 쥐와 원숭이를 실험실에서 내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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