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화

경기일보 2023. 2. 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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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한여름의 하루가 길게 늘어져 있다. 작열하던 태양도 열기를 식혀갈 즈음 한 가닥의 빛줄기가 수면 위를 애무하듯 스쳐 지나간다. 물결은 앙탈을 부리듯 이내 빛을 반사한다. 수많은 왕잠자리가 군무를 이뤄 낮은 비행을 즐길 때면 낙조가 하늘을 물들인다.

강가에서는 마른 가지에 수많은 왕잠자리의 유충이 기어 올라온다. 다리로 가지를 단단히 붙잡고는 온몸을 힘껏 흔드는가 싶더니 머리가 유충 속에서 탈피한다. 이내 꼬리를 빼내고 연약한 날개를 뻗어 햇볕에 말리고는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간다. 왕잠자리의 우화(羽化)다. 그 모습이 내 인생하고 닮았다.

나의 우화는 사춘기 때 시작됐다. 그 시절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보편적인 성공 의식을 가지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보다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를 외치며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첫 비행은 여물지 못한 날갯짓으로 보기 좋게 강변에 내동댕이쳐졌다. 자존심을 잃고 방황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날려고 준비했다. 젖은 날개를 말리고 알맞게 여물기를 기다려 날아올랐다. 드디어 자유를 누리며 멋진 비행에 성공했다. 높이 날기도 하고 저공비행으로 수면 위를 스쳐 지나며 우쭐대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익히지 못한 비행 실력으로는 오래 날지 못하는 법이다.

어설픈 비행 실력으로 세상을 날아오른다는 건 모험 그 이상이었다. 추락의 쓴맛을 보고 나서 나는 부러진 날개를 어루만지며 비행계획을 수정했다. 새로운 비행계획은 높이 나는 것도 아니요 기교가 들어간 비행기술도 아니다. 그저 내 날개 근육의 정도를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거리를 날 수 있도록 수정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성공의 기준을 나 자신에게 맞췄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나에게 맞게 계획을 변경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성공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성공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부모님과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무모하게 불나방처럼 불 속으로 돌진해야만 했다. 그 몸짓은 미친 무녀의 칼춤처럼 어설펐지만 나는 춤사위를 멈출 수 없었다. 실패자를 향해 쏟아질 비난과 서릿발 같은 눈초리를 감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척도가 이룬 부의 양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으로 가늠돼서는 안 된다. 성공이란 주어진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욕심 내지 않고 만족하는 삶이 성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행복하다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늦은 나이에 진정한 성공의 가치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높이 오르려고만 한다. 한번 높이를 더해 한계까지 오른 사람은 도대체 내려올 줄 모른다. 높은 곳은 오래 머물기에 적당한 조건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면 자연조건은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내려오는 시기를 놓치고 높은 곳에서 절명하는 정치인이며 재벌을 무수히 봐 왔다.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하지 못하면 실종사고다. 등산의 완성은 하산에 있다.

왕잠자리는 몸 안의 체액을 모두 뱉어낸 후 비로소 날아오른다. 높이 날기 위해서는 우선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됐다. 높이 올랐다가 때가 되면 내려올 줄 아는 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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