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미국 오가며 의학계 ‘유리 천장’ 깬 근대 최초 여성 의사

한겨레 2023. 2. 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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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살림이 넉넉했다.

블랙웰은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여성 의사가 진료하고, 여성이 경영하는, 여성 환자를 위한 최초의 병원이었다.

'근대 최초의 여성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이 태어난 날이 1821년 2월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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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나는 역사다] 엘리자베스 블랙웰(1821~1910)

영국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살림이 넉넉했다. 독선생을 들여 열심히 공부했다. 그 무렵 여성으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노예제도에 반대하고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진보적인 부모 덕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다. 가족은 미국에 살러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블랙웰은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때 교사로 일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이십대 중반 나이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는 피나 징그러운 광경을 보는 일을 꺼렸다. 병원에 가기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를 병구완하던 일이 계기가 돼 의학 공부를 택한다. 친구는 숨을 거두기 전 “여성 의사가 있었다면 아플 때 덜 힘들었을 것”이라 말했다. 블랙웰은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의과대학은 여성 입학생을 받지 않았다. 블랙웰은 스무곳 넘는 의과대학에 지원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오직 한곳, 미국 제네바대학에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여학생 입학을 받을 것인지를 두고 학생들 투표에 부쳤는데, 남자 학생들이 장난삼아 무더기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나. 입학하더라도 망신만 당하리라고 생각했나 보다.

블랙웰은 열심히 공부했다. 1849년 졸업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았다.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그래도 의사로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때 병원들은 여성 의사를 뽑지 않았다. 블랙웰 스스로 병원을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블랙웰은 런던과 파리에서 공부를 더 하고 돌아왔다. 의료 실습을 하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기도 했다. 1853년에는 무료진료소, 1857년에는 뉴욕에 병원을 열었다. 후배 여성 의사들과 함께였다. 여성 의사가 진료하고, 여성이 경영하는, 여성 환자를 위한 최초의 병원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는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간호사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일은 잘되지는 않았다.) 1867년에는 여성 학생을 위한 의과대학을 열었다. 말년에는 영국으로 돌아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운동을 했다. ‘근대 최초의 여성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웰이 태어난 날이 1821년 2월3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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