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서혜미 2023. 2. 2. 18: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게티이미지뱅크

서혜미 | 이슈팀 기자

아, 진짜 못해먹을 짓이다….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17도로 떨어진 지난달 24일, 겹겹이 껴입고 제일 두꺼운 패딩과 핫팩 3개로 중무장했지만 바깥은 너무 추웠다. 뚝 떨어진 기온에 거리노숙인은 어떻게 추위를 피하고 있는지, 쪽방촌 주민들은 한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취재하러 나섰다. 서울역광장과 지하철 역사 안, 지하보도 등을 세시간가량 돌아다니니, 온몸이 경직되기 시작하고 덜덜 떠느라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낼 지경이었다. 평소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고수해왔지만, 이날만큼은 포기하고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 그래도 꽁꽁 언 몸은 쉽게 녹지 않았다.

기자일을 하며 몸과 정신이 고된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은 물론 추우면 추운 곳에, 더우면 더운 곳에,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가 난 곳에, 큰불이 나면 불이 난 곳을 찾아 취재한다. 극단적인 자연환경이나 재난·사건 현장을 찾아, 촉박한 시간 안에 뭐라도 써내야 하는 상황에 계속 맞닥뜨린다. 잘 모르는 사람과 계속 만나야 하고 잦은 음주에, 욕설 섞인 메일 받기까지…. 일상의 어려움을 다 나열할 수도 없다. 그중에서도 내 정신건강을 가장 악화시키는 요인을 꼽아보자면, 언행불일치를 자주 목격하고 스스로도 실천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의 말과 글을 따라갈 수 없다. 평등과 민주를 외치는 사람들이 뒤로는 특권을 추구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들의 문제를 비판하며 대안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 가운데 일부도 부정한 방법으로 특권을 추구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곤 했다. 비판을 업으로 삼은 언론,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되고 연차가 쌓이면서 종종 미래가 두려워졌다. 법과 도덕과 윤리를 말하고, 권력을 비판하고, 자기성찰적인 글을 썼던 앞선 세대의 훌륭한 기자들도 ‘생활 속 윤리’에는 종종 무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이미 나 또한 내가 쓴 기사를 수없이 배반해왔다. 사회학자 조형근이 지난해 낸 책 제목이 이 모순을 한줄로 표현했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연초에는 두려움이 더 커졌다. 편집국 간부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무려 9억원을 빌리고, 관련 보도가 나오자 담당 부장에게만 말한 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간부와 해당 부장은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알고 지내던 사업가와 동생·처형에게서 주택자금 23억여원을 빌린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 “거액의 사채를 은행 이자보다 싼 4%에 빌렸다는 점은 쉽게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기사를 썼던 사람들조차, 유능하다는 기자들조차 자신의 일이 되면 판단과 행동이 흐려지는데 나라고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심리학에는 ‘도덕적 면허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니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게 일이고, 공익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믿는 기자들은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 같다. 앎과 행함은 다른데도 말이다. 어쩌면 <한겨레>는, 나는 다르다는 믿음이 오판을 불러왔을지 모른다.

누구도 양심을 장담할 수 없다. 이 글도 ‘고민하고 성찰하는 나’에 도취된 결과물일 수도 있고, 저연차 기자의 윤리적 정당성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언젠가 여기에 썼던 문장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분들께 그 미래가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기 위해, 최대한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언행 불일치의 가능성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않지만, 적어도 그런 사실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성찰하고 또 성찰하겠다고 말씀드린다.

ha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