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치우친 평가 축소···개입 줄여 경영자율성 높인다[국민연금 'ESG평가' 완화]

한동희 기자 2023. 2. 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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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위 가이드라인 수정
ESG 중점사안 중복된 문제 해소
추상적 용어·기준 명확하게 정의
주주대표訴 수탁위 이관은 백지화
기금위위원 구성도 보수성향 변경
경영계 "일단은 한숨 돌려" 환영
[서울경제]

국민연금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개정안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마침내 매듭을 지었다. 재계의 반발이 거셌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환경·사회 관련 중점 관리 사안 신설’안의 경우 중복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지표를 삭제하고 명확한 평가 기준을 세우면서 도입을 결정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모호한 기준을 손보며 불확실성을 해소한 것이다. 주요 상장사의 명줄이 달려 있던 대표소송 주체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넘기는 방안은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에 결정을 일임하기로 했다. 이 안이 지난 문재인 정권 공약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를 계기로 국민연금이 기업을 길들이는 스튜어드십코드에 선을 긋고 애초의 취지를 되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개정안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가진 소위원회는 지난해 말 활동을 종결하면서 기후변화·산업재해 관련 중점 관리 사안 신설을 수용하기로 했다. 다만 기존 ‘정기 ESG 평가등급이 하락한 사안’을 삭제하기로 했다. 기존 정기 ESG 평가의 경우 지표 자체가 58개로 방대하고 지배구조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중점 관리 사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기후변화 및 산업재해 리스크에 대한 가중치를 높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ESG 관련 중점 관리 사안들이 중복된다는 문제점도 해소했다. 수탁위의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정기 ESG 평가를 중점 관리 사안으로 유지할 경우 평가지표 상당수가 신설될 기후변화·산업재해 관련 중점 관리 사안은 물론 기존 주주제안 기업 선정 기준인 ‘ESG와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과 상당 부분 중복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소위원회는 기후변화와 산업재해 리스크 평가지표의 추상적인 용어와 기준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수용해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개선 여부 판단 기준을 병기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재계는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사안의 기준이 모호해 기업에 대한 지나친 경영 간섭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안 선정 기준이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리스크 등의 노출도와 취약성이 높아 그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 해석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굴뚝산업’에 속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주주제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논란이 컸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위에 넘기는 방안에 대해서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신 결정 권한을 복지부에 일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달 말 열릴 기금위에서 소위원회의 이를 의결하면 복지부가 내부 숙의를 거쳐 입장을 발표하게 된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주주대표소송 주체 변경이 없던 일이 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구조에서 국민연금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기금위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겸임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안을 통과시킬 리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안을 의결할 기금위 위원 구성이 바뀐 점도 한몫한다. 지난해 5월 새롭게 선임된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추천을 받았다. 그는 참여연대 추천을 받았던 이찬진 변호사의 후임 기금위 위원이다. 기금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자대표와 근로자대표의 입장이 대치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경영계에서는 소위원회의 결정에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업 견제용으로 악용될 우려가 컸던 쟁점들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라는 점에서다. 다만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본래 취지에 걸맞게 국민연금이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복지부 산하에 있는 구조에서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정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위원회는 개정안 쟁점 중 이견이 크게 갈리지 않았던 해외주식 차등의결권 도입 의 안에 대한 반대의결권 행사 지침도 마련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해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현지 법령 및 업계의 관행에 따라 유연한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스타트업 등 기업 경영권 보호에 필요하거나 장기 기업 발전 및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경우 예외적 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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