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기후 적응’이 가져올 인류 문명의 파국

한겨레 입력 2023. 2. 2. 17:50 수정 2023. 2. 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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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의 파란 하늘]조천호의 파란하늘
게티이미지

기후위기가 닥치면 자연만 통제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정치, 경제와 사회도 급속하고 심각한 변화와 불확실성에 내몰려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적응(Adaptation)은 기후변화로 입게 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바뀌는 기후와 그 영향에 맞춰 가는 것이다. 지구가열의 정도가 커질수록 그만큼 적응의 선택지가 줄어 위험 수준이 높아진다. 결국 적응한계(Adaptation Limits)를 넘게 되어 기후위기에서 회복할 수 없는 고위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기후변화 영향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앞으로 식량 생산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고위도 지역에서 증가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열대지역에서는 식량 생산이 감소하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은 전 지구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무엇이, 누가,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 취약성이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검토를 해야 하고 그것에 맞게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구온도 2도 오르면 극한재난 고위험 단계 진입

2022년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 IPCC ) 제2 실무그룹 ( WG II)의 6차 적응 평가보고서는 시간에 따른 다양한 영역의 기후 위험 수준을 분석했다. 5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우려 요인(Reason For Concern, RFC)은 각 부문에서 기온 상승에 따라 지역에서 전 지구까지 여러 규모에 걸친 인간, 경제와 생태계에 누적되는 핵심 위험을 나타낸다.

RFC 1, 위협받는 고유시스템: 지구가열이 커짐에 따라 그 범위가 뚜렷하게 줄어드는 생태계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위험이다. 고유 시스템은 이미 위험 수준에 있다. 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으면 고위험에 빠질 것으로 전망한다. 2도 상승을 넘어서면 적응 역량이 떨어지는 생물종뿐만이 아니라 이와 연계된 인간계와 자연계에 큰 위험을 일으킬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산호초, 북극 해빙, 산악빙하와 생물다양성이다.

RFC 2, 극한 재난: 폭염, 홍수, 가뭄, 산불, 해안침수 등 자연 재난은 건강, 생계, 자산과 생태계에 위험을 일으킨다. 얼마 전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이 위험은 1~1.5도 상승하면 급격히 커지고, 2도 상승하면 매우 심각한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RFC 3, 기후영향 분배: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노출 또는 취약성이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게 불평등하게 일어난다. 특히 지역에 따라 식량 생산에 큰 차이가 일어날 것이다. 불평등한 위험은 1.5~2도 지구가열 수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2~3.5도에서 고위험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RFC 4, 전 지구 통합 영향: 경제 피해, 인명 피해, 생물다양성 감소 등 전 지구적인 단일 지표로 집계할 수 있는 사회경제생태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위험이다. 전 지구 총체적인 영향은 지구가열 1도에서 감지되는 수준이며, 1.5~2.5도에서 위험에 들어서고 2.5~4.5도에서 고위험에 빠지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RFC 5, 대규모 특이 사건: 빙상 붕괴 또는 대서양 열염순환 속도 감소 등처럼 전 지구적으로 규모가 크고, 급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다. 대규모 특이 사건은 1.5~2.5도와 2.5~4도에서 각각 위험과 고위험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파리기후협정 목표인 2도 상승으로 막을 수 있다면 엄청난 성과로 여겨지겠지만, 사실 재앙에서 벗어나는 수준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덜 쾌적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의 원인을 줄이기 위한 온실가스 ‘저감’과 함께 기후변화의 결과에 맞추기 위한 ‘적응’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저감을 통해 지구가열의 속도와 세기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후위기에 도달하기 전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적응에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 ‘기후회복력개발’ 필요

한편, 기후변화에 잘 적응한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병든 몸에 잘 적응한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적응 조치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을 일으켜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다. 이를 오적응(maladaption)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방파제는 단기적으로 해안 지역을 보호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해안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인구 증가, 과잉 소비, 급속한 도시화, 토지 황폐화, 생물 다양성 손실, 불평등과 빈곤 등과 같은 다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 세상은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상호 작용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저감과 적응을 통해 기후 위험을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포용적이고 공정하며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정의로운 세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를 ‘기후회복력개발(Climate Resilient Development, CRD)’이라 한다. 기후회복력개발은 과학기술뿐만이 아니라 가치, 세계관, 이데올로기, 사회 구조, 정치와 경제 체제, 권력관계를 담대하게 전환하는 것이다.

기후 위험 감소,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지속 가능한 개발은 사회적 선택의 결과가 누적되어 이루어진다. 경로를 제시하는 목적은 최적계획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로에 놓여있는 각 과정에서 그 변동성과 그로 인한 불확실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다. 매번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경로에서 탄력적으로 최적 경로를 탐색하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우리의 선택이 기후회복력개발의 수준을 결정한다.

지구가열이 커질수록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도 함께 커진다. ‘손실’은 인명, 생계, 문화 등이 상실되는 것이고 ‘피해’는 사회 기반 시설, 생태계 등이 무너지는 것이다. 손실과 피해는 기본적으로 소득과 물리적 자산과 관련된 경제 관점에서 다루지만, 생태계, 문화유산과 인명에 대한 손실 등 경제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기온상승에 따라 비경제적 손실이 경제적 손실보다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전망한다.

선진국이 화석연료를 태워 기후위기를 대부분 일으켰지만 정작 손실과 피해는 가난한 나라와 취약 계층에게 불평등하게 일어난다. 가난한 나라는 이 위험에 대응할 능력이 없고, 가난한 사람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모든 시간과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대부분 지역에서 재난에 필요한 조치와 실제 취한 조치 간 적응 격차(Adaptation Gap)가 크다.

‘기후위기 빙산’ 충돌 피할 시간 있지만 망설이면 늦어

지구가열 수준이 1.5도를 넘을 경우 2030년까지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기후위기에 취약한 사람들에게 식량 불안, 소득 손실, 생계 기회 박탈,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과 난민 이주로 인한 위험이 불평등하게 일어난다. 지구가열을 2도로 막는다고 해도 빈곤과 불평등이 크다면, 지구가열은 불안정한 사회에서 증폭되어 파국적인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

기온 상승 2도를 넘어서면 저지대 해안 도시, 섬, 사막, 산악, 극지 등 위험에 직면한 일부 지역에서 물·식량·에너지의 불안정, 취약한 환경과 생태계 황폐로 인해 기후회복력을 상실한다. 이에 따라 가난과 불평등이 증폭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리고 극단적인 날씨가 빈발하여 여기에 대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경제성장 비용을 초과하여 세계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구가열 수준이 3도 이상이 되면 적응한계를 넘게 되므로 기존 체계로는 위험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손실과 피해가 빈부에 상관없이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적응한계는 문명 한계이며 이는 곧 문명 붕괴를 의미한다.

기후가 단순히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ᅠ무너지려고 한다. 이와 함께 이 세상도 무너지려고 한다. 전 세계적인 연대에 바탕을 둔 선제적인 저감과 적응을 더 이상 지체한다면, 모두가 지속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히게 될 것이다. 공정과 정의에 기반한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체계로 전환해야 기후회복력개발을 할 수 있다. 특히 유엔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이기도 한 가난과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이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타이타닉호는 그 앞에 빙산을 보았지만 거대한 관성으로 인해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빙산에 충돌해 침몰했다. 인류 문명 앞에 기후위기 빙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방향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다. 하지만 망설이기에는 너무 늦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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