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아이디어, 보이지 않는 것의 힘

2023. 2. 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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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연·대청마루 형상화한
류춘수 건축가의 상암축구장
UAE를 금융허브로 만드는
영국·미국 컨설팅사의 자문
세상을 바꾸는 생각의 힘

지난해 12월 손흥민 선수의 현란한 드리블로 승리한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류춘수 건축가가 네모난 전통 방패연에서 착안해 설계한 경기장입니다. 내부 다목적 홀에는 붉은 무늬 대리석이 깔렸는데 나뭇결 짙은 대청마루 같습니다. 대리석 벽은 한옥 창호지처럼 은은합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캐낸 국내산 대리석들입니다. 질박한 우리 전통미가 담겼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축구장에 선정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1958년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진주조개잡이 지역이었습니다.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는 석유 산출량도 많지 않아 대규모 건설과 관광으로 활로를 찾습니다. 2004년에는 국제금융센터를 설립하고 금융자유지역으로 지정합니다.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 파격적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곳에선 두바이법을 사용하지 않고 영국법을 차용한 법을 적용합니다. 전속 법원에는 영국계 외국인 판사가 8명이고 아랍인 판사는 5명입니다. 세금도 면제되어 1000개 넘는 금융 관련 기업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랍권 금융 허브를 넘어 전 세계 자금이 모입니다. 거대한 변화의 아이디어는 영국과 미국 컨설팅사들이 제공합니다.

신기술 경연장인 미국 CES 박람회에선 각국 기업들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선보입니다. 전기차 등장으로 자동차산업은 중공업이 아닌 전자산업이 됐습니다. 일본 소니사가 전기차를 선보입니다. 우주왕복선을 타고 서울에서 뉴욕까지 30분 만에 이동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포의 비밀을 풀어 인간 수명을 200년으로 연장하는 프로젝트도 등장했습니다.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나오는 새로운 발상들은 전에 없던 사법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 구속보다 범죄수익 환수가 좋겠다'는 생각에 범죄수익 환수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예전 형사사법 체계는 범죄 피의자와 피고인 권리 중심이었지만,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퍼져 피해자 중심 사법이 등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가 존중되는 시대입니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중요해졌습니다. 암호화폐, NFT(대체불가토큰),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가상세계가 속속 펼쳐집니다. 자문, 컨설팅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노하우와 아이디어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도 긴요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자문 비용을 충분히 쓰지 않으면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자문을 받아야 좋은 결과가 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설계비를 적게 써야 채택되는 낙찰 시스템에서는 걸작이 못 나옵니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업의 무형(無形)의 가치를 알아줄 때 인재가 모이고 그 분야가 발전합니다.

보이지 않는 창의적 역량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진 않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1만시간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하루 3시간 몰입하면 10년, 하루 10시간 몰입하면 3년이 걸립니다. 법률가도 오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어야 보이지 않는 노하우가 쌓입니다. 기업과 대학도 조급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도전하고 축적하는 토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넓은 세상에서 생각과 아이디어를 단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수출 기업인들은 물론, 문화계와 체육계의 많은 스타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합니다. 해외 진출 기업들과 함께 우리 법률가들도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때입니다. 험한 해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전문역량과 노하우를 치열하게 쌓아야 합니다. '현해탄'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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