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불리고 목소리도 커져”…IT노조, 올해도 순항 이어지나
일각에서는 IT노조가 동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직이 잦고 임금 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계 특성상 노조가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한편에서는 올해도 주요 IT 기업에서 굵직한 노사 현안이 예상되기 때문에 노조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IT노조 설립 초기에는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주요 IT노조 대다수가 민주노총 소속으로 설립된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나 IT노조들이 노사 교섭을 통해 성과를 만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한 포털업계 관계자는 “노조 설립 초기만 해도 민주노총 계열인 것을 놓고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왔는데 최근에는 직원들을 위해 행동한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조직률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네이버는 계열사 간 근로조건 차이를 좁히기 위해 공동요구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공동요구안 주요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 전담기구 설치 ▲과도한 업무시간 방지 ▲분할·합병·양도·전환배치 시 노조에 사전 고지 등이다.
네이버는 괴롭힘 전담기구 설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업무시간과 전환배치에 관한 사항은 ‘일하는 방식 개선 TF’를 설치해 논의하기로 했다.
네이버 노조인 ‘공동성명’은 지난해 교섭 과정에서 집단교섭의 발판을 마련했다. 9개 법인의 단체교섭 체결일을 모두 지난달로 맞춰 집단교섭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를 채운 것이다.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온’은 최근 조합원 수가 늘면서 설립 당시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크루유니언 조합원 수는 2019년 약 400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4000여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크루유니언은 설립 이후 첫 단체협약에서 포괄임금제 폐지와 육아휴직 2년 확대를 얻어냈다. 최근에는 카카오페이 먹튀 논란과 관련해 스톡옵션 매도 제한 규정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제조업 등 주요 업종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립적 노사관계와 다른 점도 IT노조가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다.
넥슨의 경우 노사 간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넥슨은 노조 ‘스타팅포인트’가 요구했던 임금보다 더 높은 인상폭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폐업 처리된 자회사 직원을 모두 본사로 들여 고용을 승계했다. 법인을 분리할 때는 넥슨코리아의 단체협약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넥슨도 6개 법인 모두 단체협약 체결 시기가 일정해 집단교섭 토대가 마련된 사례로 꼽힌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고 노사관계도 원만해 노조를 지지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른 업종과 비교해볼 때 임금 협상 이슈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이직이 잦아 노조 규모를 유지할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도 IT노조가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승욱 크루유니온 지회장은 “저희는 시작부터 요구 사항이 다양한 면이 있었다”며 “노조가 성장했던 히스토리를 보면 처우 문제라고만 보기는 좀 어렵고 시대적 상황들을 반영해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우려라는 지적도 있다. 노사 현안이 올해도 꾸준히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IT노조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 이선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네이버는 올해 여러 사업부를 네이버클라우드 법인 중심으로 통합할 예정”이라며 “이로 인해 상당수 노동자의 법인 간 이동이 예고되고 있어 올해도 이 문제는 쟁점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카오에서도 노조 영향력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크루유니온은 현재 회사와 과반노조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과반노조가 확정되면 공식적으로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게 된다. 주요 근로조건을 결정할 때 동의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다만, 과반의 기준이 되는 전체 직원 수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다. 크루유니언 측은 올해 하반기 중으로 과반노조 여부를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업력도 짧고 구성원들의 이동이 잦아 그동안 (노조의) 동력이 약했는데 최근에는 IT 업계 전반에 걸쳐 회사 경영 방식이나 문화가 유사해 동일한 이슈가 공유되면서 노조가 결속력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의 이직이 많아서 주요 IT 기업들의 경영진이 의외로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며 “카카오 노조가 최근 근무제도의 잦은 변경에 반발해 다른 IT 기업 경영진도 카카오를 주목하고 있는데 카카오를 시발점으로 IT노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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