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과 윤석열의 ‘허튼’ 동상이몽 [아침햇발]

강희철 2023. 2. 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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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강희철 논설위원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 용산구에 산다. 국민의힘(국힘) 3월 전당대회 출마를 접기 전날은 물론,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손익계산에 분주하던 시기에도 ‘용산구 자택’은 시시때때로 언급됐다.

그래서 이 장면이 참 묘하다. 지난해 8월11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시장 앞에 나 전 의원을 비롯한 국힘 의원들이 수해 복구 작업을 돕는다고 모여들었다.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진심 어린 망발의 무대가 된 그곳에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기둥으로 이름을 떨치던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나경원(의 지역구가) 아니면 (대상지를) 바꿀라 그랬지.”

나 전 의원은 그 동네 당원협의회 위원장이라며 “동작구민을 대신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용산구민이 동작구민을 대신해 사의를 표하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직주일치가 대세요 로망이라는데, 나 전 의원은 ‘출퇴근 당협위원장’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지역구를 놓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떡 하나를 더 쥐여줬다. 지난해 10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직을 맡긴 것이다. 비상임이라곤 하나 장관급 자리다. 위원장이 대통령인데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떠받치는 기구이니 중요성과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다. 기본법에는 인구절벽, 초고령 사회 등의 “정책에 관한 중요 사항 심의”를 책무로 한다고 적혀 있다.

다뤄야 할 의제는 하나같이 심각하고 절박하다. 지난해 0.73명으로 신기록을 경신한 합계 출산율은 내년 0.70명으로 바닥 모를 하락이 예고돼 있다. 7년 뒤면 노인 인구 비율이 25%를 넘어간다. 곧 생산 가능 인구 2.5명이 노인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 연금 고갈 예상연도는 해마다 앞당겨지고 있다. 노년층 빈곤율도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이후 투입한 재정만 240조원이 넘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 전 부위원장을 임명하던 날, 대통령실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2017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그 대책을 깊이 고민해오신 4선 출신”이라서 발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정활동 내내 대표발의한 67개 법안 중 저출산·고령화와 관련이 있는 것은 그 개정안이 유일하다. 자녀를 둘 이상 기르는 가구에 ‘다자녀 카드’를 지급하자는 것인데, 그마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것이 ‘깊은 고민’의 전부다.

나 전 부위원장은 지난해 10월13일 임명돼 지난달 13일 해임될 때까지 저고위 전체 위원 회의를 단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그사이 기자들과 전화 통화에서는 국힘 당대표 선거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내비쳤다. 저고위 부위원장직은 당대표 또는 다음 총선 때까지 정치적 공백기의 헛헛함을 채우는 알바 같은 자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위원장 해임과 출마 포기 이후 그를 ‘윤심’의 피해자로 포장하는 일부의 시각은 아무리 봐도 코미디에 가깝다.

‘잿밥’만 탐한 나 전 의원이 자초한 일이지만, ‘염불’에 뜻이 없기는 대통령도 매한가지다. 정치적 셈법이 훤히 보이는 나 전 의원을 저고위 부위원장에 앉힌 것부터가 그렇다. 혹여 “업어 키웠다”던 대학 후배가 예뻐서 그 자리를 하사품 정도로 여겼다면 공사 분별을 잃은 처사다. 법에 정해진 당연직 위원장이면서 취임 뒤 저고위 전체회의를 소집한 적도 없다.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난제의 결절점인 초저출산·초고령화는 ‘부모급여’ 같은 것으로 해결을 기대할 사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나 전 부위원장 후임에 40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의 형이 운영하는 대학에 재직 중이라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일부의 의혹 제기는 술안주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 교수가 힘세고 말 많은 관련 부처들과 민간 전문가들을 잘 조율해 실효성 있는 정책 방향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로또 당첨 확률보다도 낮다는 게 문제다. 두번의 부위원장 인사를 통해 윤 대통령은 초저출산·초고령화를 대하는 자신의 무지와 안일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렇다고 역대 대통령들이 더 나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아예 저고위 전체회의를 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 이전 4년 반 임기 동안 저고위 회의에 딱 두번 참석했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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