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공소장 곳곳에 어른거리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그림자[이태원 참사 100일]
“대규모 집회시위 대응으로 경력 부족 등 부각되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크다. 적극적인 수사 드라이브로 주최 측 자치단체 책임이 부각되도록 조치가 필요하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이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지난해 10월30일 경찰 정보 관계자들에게 카카오톡으로 공유한 대응 방안이다. 박 전 부장은 대통령실 근처에서 열린 집회를 막느라 경찰력이 이태원에 배치되지 않은 점이 부각되면 이태원 참사의 근본 원인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지목될 것을 우려했다. 이 경우 앞으로 지역행사 및 축제에 더 많은 경찰력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최 측과 자치단체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박 전 부장의 생각이었다.
이태원 참사 100일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총 17명이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돼 기소됐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구속기속됐고,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과 유승재 전 부구청장 등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한 박 전 부장도 기소됐다. 박 전 부장의 대응책은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데도, 책임을 지자체에 돌리는 데도 실패했지만 한 가지는 성공했다는 말이 경찰에서 나온다. 책임론이 대통령실까지 번지는 것은 막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관계자의 공소장에서 대통령실을 단 한 차례만 직접 언급했다. 박 구청장과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당원들이 참여한 ‘용산의 힘’ 카톡방에 한 당원이 “구청장님이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을 대상으로 국정 설명회가 있어 대통령실에 다녀오셨다”는 글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공소장 곳곳에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박 전 부장의 공소장을 보면 용산서 정보관은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를 10월26일 경찰견문보고시스템에 올렸다. 이태원 일대에 많은 숫자의 인파가 몰려 위험하므로 경찰 대응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이거(보고서) 누가 쓰라고 했나. 주말이고 하니까 집회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정보관이 축제에 나가서 할 게 뭐 있나. 이건 주최도 없고 그냥 크리스마스와 같은 거다. 그냥 자료만 올리고 집회에 나가야 된다”며 묵살했다.
사고 당일 경찰력은 대통령실이 인접한 전쟁기념관 집회에 집중됐다. 이날 신고된 집회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발족식 집회, 대학생 기후행동 행진, 미국은손떼라서울행동 대북적대 군사행위 중단 반미 집회, 나라지키미 대한민국 안보 수호를 위한 집회 등 총 4개였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기동대 3개 부대가 오후 8시까지 투입됐다. 오후 8시 이후 야간조로 편성된 기동대 1개 부대는 대통령실 거점 경비를 위해 녹사평역과 삼각지역 인근에서 대기했음에도 핼러윈 현장에 파견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서울 서초구에는 집회·시위가 없었음에도 기동대 2개 부대가 배치됐다.
구청 역시 구조에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을 윤 대통령의 출근길 관리에 투입했다. 박 구청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8시59분 비서실 직원들이 있는 단체메신저방에 “(삼각지역 인근) 집회 현장으로 가서 전단을 수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받은 비서실장은 오후 9시 용산구청 당직자 A씨에게 전화해 “구청장 지시사항이니 전쟁기념관 북문 담벼락에 붙어있는 시위 전단을 수거하라”고 했다. 이에 용산구청 당직 직원 2명은 오후9시10분쯤부터 10시40분쯤까지 삼각지역 근처에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벽에서 떼는 작업에 투입됐다. 이들은 앞서 같은 날 오후 8시40분쯤 “이태원 차도, 인도에 차량과 사람이 많아 복잡하다”는 민원 전화를 받고 이태원 인파 밀집 지역에 출동하려던 참이었다.
한 일선 경찰관은 2일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겠느냐”며 “수사 드라이브로 대통령실 책임론을 막겠다는 박 전 부장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보면 훌륭하게 작동한 것”이라고 했다.
[인터랙티브] 피할 수 있었던 비극, 이태원 참사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itaewon/)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itaewon/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만하면 됐다”는 말이 2차 가해가 되는 이유[이태원 참사 100일]
- 시민들에게 건네는 유가족의 진심 “눈물조차 안 나오던 날, 대신 울어줘 고맙습니다”[이태원
- 이태원 참사 100일, 같은 것과 달라진 것[이태원 참사 100일]
- [전문]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이 시민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이태원 참사 100일]
- “엄마는 네 마지막을 아직 모른다”···‘일선유죄’ 특수본, ‘빈손’ 국조가 풀지 못한 과제
- “사과해” “손가락질 말라” 고성·삿대질 난무한 대통령실 국정감사 [국회풍경]
- 수능 격려 도중 실신한 신경호 강원교육감…교육청·전교조 원인 놓고 공방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이러다 다 죽어요” 외치는 이정재···예고편으로 엿본 ‘오겜’ 시즌2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