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도 ‘보통 청춘’ 될 수 있게!”
[서울&] [사람&]
만든 책자를 보여주고 있다. 2019년부터 4년 동안 펼쳐진 캠페인에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이 캠페이너로 직접 참여했다. 김 팀장은 최근 이들을 위한 <안녕, 열여덟 어른>을 펴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4년간 자립준비청년 캠페인 이끌어
정부 지원 늘었지만 자립 문제 여전
책에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 담고
이들 눈높이에서 숙의할 것을 제안
보육원이나 위탁·그룹홈 가정에서 생활하던 청소년의 경우 만 18살부터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지난해 8월 보육원에서 자라 자립을 앞두고 있던 청년 2명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 확대, 연령 연장 등 여러 조처에도 세상을 등지는 청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부터 아름다운재단의 자립준비청년 지원 공익 캠페인 ‘열여덟 어른’을 이끈 김성식(43) 1%나눔팀장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김 팀장은 이 질문을 제대로 다루고 싶은 마음에 <안녕, 열여덟 어른>(파지트 펴냄)을 썼다.
“정책 한두 가지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고 해결 방향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1월12일 종로구 옥인동 아름다운재단에서 만난 김 팀장은 책을 쓴 이유부터 말했다. 그는 “마법 같은 대책은 없다”고 말한다. 제도, 현장, 사회적 인식, 당사자 등 다양한 분야와 계층에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녕, 열여덟 어른>은 1장에서는 자립준비청년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2장에서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자립이란 무슨 의미인지, 이들이 보통의 청춘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다뤘다. “자립준비청년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자립 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야 건강한 홀로서기를 돕는 정책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다”고 김 팀장은 힘줘 말했다.
책 제목에서 ‘안녕’은 중의적 표현이다. 먼저 우리가 자립준비청년을 맞이하는 인사이다. 김 팀장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면 편견을 넘어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뜻의 ‘안녕’은 자립준비청년 자신에게 건네는 작별인사이다. 홀로서기가 준비됐다고 생각할 때 ‘열여덟 어른’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의미로 사용했다. “자립준비청년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보통의 청춘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며 “이런 바람은 청년들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책 표지 일러스트에도 담았다”고 했다.
4년 동안 캠페이너로 함께했던 자립준비청년들을 생각하며 김 팀장은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남다른 환경 때문에 위축되고 마음을 다친 이들이 있다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기대를 담았다. 책을 읽고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는 캠페이너의 반응도 있었다. 그는 “캠페이너들에게 ‘마음으로 함께한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며 “사회구성원들이 이들의 삶에 공감해주고 마음 써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정부, 언론, 대중 모두가 (자립문제 해결에)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풀어가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가 보기에 지금이야말로 자립준비청년 문제를 들여다보는 ‘골든타임’이다. 책에서 그는 당사자 시각에서 이뤄지는 복합적인 해결 방향을 제안한다. 보육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보호와 보육을 넘어 양육으로 바뀌어야 하며, 우선은 정서적으로 교감했던 보육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자원 확충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다양한 지원 제도를 참고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그는 인식 개선을 꼽았다. 특히 미디어가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 캐릭터는 비현실적인 ‘캔디형’이나 ‘악인형’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이런 편견은 자립준비청년들을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그는 “미디어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우리 사회 편견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을 도우려는 시민들에게는 동정보다는 관심과 응원의 태도를 조언했다. 개인적인 만남에서 서로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태도에 섭섭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보육시설에서 봉사하면서 일시적인 감정인지 확인해보는 등 시간을 두고 관심을 늘려갔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김 팀장은 “자립준비청년 문제 해결의 마지막 열쇠는 당사자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들 스스로 사회가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는 것을 알고 편견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며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캠페인에서도 처음엔 캠페이너들이 신분 공개를 꺼렸지만 진행 과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변화가 있었다.
그가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도 청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바꾸고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이들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도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이어진다. 김 팀장은 “자립준비청년에게 기다려주고 믿을 수 있는 어른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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