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곡동 살인' 유족 "국가책임 인정하는 사례 쌓이고 쌓이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2년 8월20일.
박씨는 "이번 소송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쌓이고 쌓이면 조금만 신경 쓰면 일어나지 않을 '인재'(人災)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면서 "여전히 어디서든 이 같은 사건은 또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계속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못해 준 소소한 것 해보려 해"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2012년 8월20일. 그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박씨의 아내는 언제나 그랬듯 어린 두 자녀를 유치원으로 배웅하러 나갔다. 그 틈을 노려 그의 집에 범인 서진환(당시 43세)이 몰래 침입했다. 서진환은 집으로 돌아온 박씨의 아내를 성폭행하려다 완강히 저항하자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으로 불렀다.
아내를 비극적으로 보낸 박씨의 삶은 그날부터 송두리째 흔들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행복하려고 결혼했고 또 행복하게 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왜 남에 의해 망가져야 하나'라고 원망했습니다. 사실 2년 전까지도 계속 그런 생각이었어요."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를 짓눌렀다.
박씨는 "섬처럼 고립된 곳으로 가고 싶었다"며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도 볼 수 없었고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도 아예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린 두 자녀가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가장 힘겨웠다.
박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며 "어느 날은 딸이 찜질방을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다른 애들은 다 하는 걸 못 해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했다.
중곡동 살인사건은 1일 법원의 판결로 11년 만에 다시 주목받게 됐다.
사건 이듬해인 2013년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박씨가 일부 승소하면서다.
1·2심에서는 박씨가 패소했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 박씨의 손을 비로소 들어줬다.
박씨는 이날 판결 뒤 10년간의 긴 소송을 마친 소감을 묻자 "사실 좋은 마음은 안든다"며 "소송하는 동안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커서 '굳이 이럴 일인가'하는 고민도 많이 했고 이번 소송으로 경찰 대응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다"고 답했다.
또 "사실 나라에서 뭘 해줘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며 "평생을 맘속에 품고 살아가는 상처여서 치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소송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응원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이번 소송이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쌓이고 쌓이면 조금만 신경 쓰면 일어나지 않을 '인재'(人災)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가의 책임을 30%만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매우 아쉽다"며 "국가의 책임이 적어도 60%는 될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 판결이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면서 "여전히 어디서든 이 같은 사건은 또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계속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는 일이) 조금이라도 덜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유족도 소송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제가 받은 판결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제 그는 그간 못해본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캠핑하러 가고 싶다고 그랬는데 이번에 가보려 합니다. 소소한 것들을 다시 해보려고요."
winkit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강남 '무면허 운전' 20대 체포…송파구서 1차 사고도(종합) | 연합뉴스
- 화천 북한강에서 토막 난 시신 일부 떠올라…경찰, 수사 나서 | 연합뉴스
- 은평구 70대 아버지 살해한 30대 아들 구속…"도주 우려" | 연합뉴스
- "지난해 사망한 아버지 냉동고에 보관"…40대 1년 만에 자수 | 연합뉴스
- '벌통 확인하겠다' 횡성 집 나선 80대 실종…이틀째 수색 중 | 연합뉴스
- 에르메스 상속남 18조원 분실사건…정원사 자작극? 매니저 횡령? | 연합뉴스
- 러 연방보안국 신년 달력에 푸틴·시진핑 '브로맨스' | 연합뉴스
- "훔치면 100배 변상"…일부 무인점포, 도 넘은 '합의금 장사' | 연합뉴스
- 로제 '아파트' 영국 싱글차트 2위…"향후 상승세 기대"(종합) | 연합뉴스
- 필라테스 강사 출신 배우 양정원, 사기 혐의 고소당해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