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투약해도 혈당 조절 안 돼…벼랑 끝 환자, 살길 찾았다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아직 젊지만 훗날 '명의(名醫)'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차세대 의료진을 소개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질환과 치료 방법 등을 연구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젊은 의사들에 주목하겠습니다.
"인슐린 다회 투약을 하시는데도 도저히 혈당 조절이 안 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더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당뇨병 치료에서 새로운 기술이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선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혈관센터의 인공췌장 클리닉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2020년 5월 개소한 강북삼성병원 당뇨혈관센터 인공췌장 클리닉은 '인공췌장'을 비롯해, 당뇨병 치료의 최신 테크놀러지를 갖췄다. 심각한 합병증이 곧 찾아올 당뇨 환자들에게 최신의 치료 기술은 새로운 희망이 됐다.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기술들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 그리고 이 두 개를 알고리즘으로 조합한 인공췌장이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는 당뇨병 환자의 채혈 고통을 줄인다. 500원짜리 동전만 한 기구를 팔이나 복부에 붙여두면 간질액의 당을 실시간으로 측정해서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로 전송해준다. 실시간 혈당 체크만으로 당화혈색소 감소 등 당뇨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교수는 "특별한 원리가 있는 게 아니라 혈당을 자주 모니터링하면서 내가 원하는 범위 내 혈당을 잘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새로운 약물로 혈당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단순히 모니터링하는 기술로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치료법의 어느 단계서든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생긴 셈이다"고 말했다.
현재 연속혈당측정기는 1형 당뇨병 환자에서 표준 치료로 사용되고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1형 당뇨병 환자 대상으로 개발이 이뤄졌고, 임상 시험 근거도 1형 당뇨병 환자 위주로 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교수는 "2형 당뇨병 환자에서도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의 임상적 근거들이 쌓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2형 당뇨병이라도 인슐린 다회 투약이 필요한 환자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는 임상적 근거가 많이 있다. 미국은 1형과 2형을 나누지 않고 인슐린 다회 투약이 필요한 환자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문 교수는 "머지않아 인슐린 다회 요법이 필요한 2형 당뇨병 환자에게도 연속혈당측정기가 표준 치료로 확대될 것"이라며 "그 외의 2형 당뇨병 환자에서도 점진적으로 적응증이 확대돼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슐린 펌프는 인슐린 다회 투약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3~4일에 한 번씩만 바늘을 교체해주면 되기 때문에 환자의 바늘 노출 횟수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식사 시 투여해야 할 인슐린, 이른바 '속효성 인슐린' 용량을 결정하는 데도 인슐린 펌프가 계산을 도와준다. 기본적으로 인슐린 다회 투약이 필요한 환자에게 사용되지만 부작용이나 기저질환으로 인해 경구약 투여가 어려운 환자들도 인슐린 다회 요법으로 치료를 변경하고 펌프를 쓰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인슐린 펌프는 인슐린 다회 요법과 비교했을 때 효과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 교수는 연속혈당측정기 없이 인슐린 다회 투약과 펌프를 비교했을 때, 당화혈색소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지 않은 연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한 상태에서 인슐린 다회 요법과 인슐린 펌프를 비교한 임상 시험에서도 혈당 조절에 차이를 보인 결과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인공췌장은 달랐다. 인공췌장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펌프를 연동시키고 거기에 알고리즘을 적용한 기계다. 문 교수는 "연속혈당측정기와 펜형 인슐린을 쓰거나 또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를 같이 사용하는 것과 인공췌장을 비교하면, 인공췌장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근거가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뇨병 환자의 치료 효과를 볼 때는 혈당 조절의 '목표 범위 내 시간'(Time In Range·TIR)이라는 평가 지표를 사용한다. 연속혈당측정기도 안 쓰고 펜형 인슐린 주사기만 사용하는, 1형 당뇨병에서 가장 기초적인 환자군과 비교하면 인공췌장은 15~20% 이상의 TIR 개선을 보인다고 문 교수는 설명했다.
인공췌장은 착용감이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나이가 있는 환자는 기계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문 교수는 "인공췌장을 사용하면 고혈당과 저혈당이 모두 좋아진다는 강력한 임상적 근거들이 충분히 많이 있다. 성적 자체만 보면 압도적이다"며 "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쓸 수 있다면 꼭 쓰라고 할 정도이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50대 후반 환자 사례를 들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면서 펜형 인슐린을 투약하던 환자였다. 환자 본인도 의지가 있어 스스로 탄수화물 측정도 하는 등 열심이었지만, 어느 수준에서 치료 성적 호전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새벽에 혈당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목표 범위 내 혈당은 60%에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 이에 문 교수는 환자에게 인공췌장의 임상적 근거를 설명하고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 교수는 "인공췌장을 사용하고 나서 60%였던 환자의 TIR이 거의 80% 가까이 올라갔다"며 "환자가 새벽 저혈당을 크게 우려했었는데 그것이 거의 없어졌다는 걸 가장 큰 장점으로 얘기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당뇨병에서 최전선의 치료법으로도 극복하지 못한 걸 디바이스의 발전으로 가능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당뇨병 치료 최신 기기들에도 한계는 있다. 가령, 기초 인슐린 투약은 자동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식사 시 인슐린 투여량은 환자가 스스로 탄수화물을 계산해 넣어야 한다. 식사 후 바로 혈당이 치솟는 걸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속혈당측정기는 혈액에서 혈당을 측정하지 않고 간질액에서 새어 나온 당을 측정하기 때문에 실제 혈당과 시간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슐린 투약 후 체내에서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시간이 딜레이된다. 따라서 혈당이 빠르게 변하는 식후 혈당까지는 아직은 자동으로 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다. 문 교수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반자율 주행 수준이다"며 "완전 인공췌장까지 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알고리즘이 적용된 인공췌장은 지난해 초에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도입 시기가 늦어 아직 대중화가 덜 된 부분이 있다. 문 교수는 "새로운 디바이스가 생기면 이걸 사용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거기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우리나라 진료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 짧은 진료를 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디바이스의) 발전이 더딘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당뇨병 환자들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특별히 인슐린 다회 투약이 필요한 중증 당뇨병 환자분들에게선 더 어려운 게 맞다. 그렇지만 적절한 치료법과 교육이 있으면 성공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전해가는 디바이스들을 잘 활용하면 더 극복하고 개선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니 낙담하지 말고 차근차근 활용해가면서 더 나은 삶의 질과 건강을 누리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프로필]문선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200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2014년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 동병원 내분비내과 전임의·진료교수를 거쳐 2020년부터 강북삼성병원 임상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Endocrine Week 최우수연제상, 2019년 Korea Clinical Datathon 2019 대상, 2019년 대한당뇨병학회 추계 연구비 수상, 2020년 대한내분비학회 EnM 연구상, 2021년 DMJ 우수논문상, 2022년 KBSMC 최고 IF 발전상 등 수상 이력을 갖췄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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