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스캔들' 장애 묘사, 유감입니다
[기고]
[미디어오늘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컨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전도연과 정경호가 러브라인을 쌓아가는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을 가끔 챙겨보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1월28일 방송된 5화를 보고 전국의 장애인들과 장애인 가족들이 분노했다. 주인공 남행선(전도연 분)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는 자폐인 동생 남재우(오의식 분)가 경찰서에 구금되는 장면이다.
재우에겐 자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루틴(정해진 일상)'이 있다. 동네 카페에서 와플을 잘 굽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는 시간에 찾아가 와플을 사먹는 것. 카페에서 같이 일하던 남자친구는 아르바이트 시간대를 옮겨도 굳이 자신의 여자친구가 일하는 시간에 찾아오는 재우를 스토커로 오해해 멱살을 잡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스토킹으로 고소된 재우는 경찰서로 끌려가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구금된다. 경찰서로 달려온 행선은 “제가 가게 하느라 케어를 잘 못해서… 자폐 스펙트럼 특성상 하나 꽂히면 꼭 해야 한다. 나쁜 의도는 없다”며 선처해달라고 조아린다. 남자친구는 “왜 정상도 아닌 사람을 싸돌아다니게 내버려 둬서”라며 고소를 강행하려 하는데, 여자친구는 눈물을 흘리는 행선이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신은 짝짝이 신발을 보고 고소를 철회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못된 설정이다. 우선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발달장애인 변호 경험이 있는 국선전담변호사 손영현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카페 직원이 발달장애인 멱살을 잡은 것이므로 사과는 직원 교육을 시키지 못한 카페 사장이 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을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고 수갑까지 채운 것 또한 경찰이 잘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선 1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고용노동부 고시로 직장내 장애인식교육을 하게 되어 있다. 단기 아르바이트생은 교육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작은 사업장이라도 적어도 교육자료를 직원에게 배포라도 해야 하는 게 규정이다. 드라마 상황처럼 고용된 직원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동을 했을 때는 사업주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드라마의 묘사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사항과 상충된다. 수사를 받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보장되어 있다. 드라마처럼 발달장애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유치장에 구금하는 건 오히려 경찰의 인권침해 소지가 높다. 발달장애인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경찰의 행동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몇 차례나 시정 권고를 했다. 2021년에는 발달장애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위협적이라며 신고가 들어온 건에 대해 경찰이 해당 장애인을 뒷수갑을 채워 연행한 사건에서 인권위는 '발달장애인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라며 경찰청에 권고했다. 작년 11월에도 인권위는 발달장애인이 절도사건 혐의로 조사받는 과정에서 해당 장애인이 믿을 수 있는 조력자나 발달장애 이해가 높은 전담수사관 없이 일반 수사를 한 사건을 두고 경찰청장에 발달장애인 조사 준칙뿐만 아니라 조사를 하는 직원 교육, 전담 사법경찰관 확대를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보면 '아, 발달장애인은 저렇게 오해를 사는 행동도 고소의 대상이 되는구나' '발달장애인은 수갑 채워서 유치장에 넣어도 되는구나'로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법적 팩트가 틀린 데다가 행선의 대사,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남자친구 대사 또한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상처가 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을 '비장애인에게 해가 된다'며 규정해 버리고 이를 '미안하다'는 대사로 상황을 손쉽게 종료해 버린다. 특히 남자친구의 말인 “그러게 왜 정상도 아닌 사람을 싸돌아다니게 하나”라는 문장은 휠체어 이용자들이 지하철을 탈 때 종종 듣는 “왜 바쁜 출근 시간대에 나와서 불편을 끼치냐”라는 악담이나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들이 상점에서 거부당하는 모습과 겹쳐졌다.
행선이 “아, 제가 잘 케어를 했어야 하는데”라던지 “미안하다. 고소만은 하지 말아달라”라며 울먹이는 연기는 장애인 가족들이 겪는 부조리한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화가 났다. 일상에서 장애를 '미안하게' 여기게끔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프로그래밍되기 일쑤다. 예전에 백화점 엘리베이터에 휠체어를 탄 딸과 함께 타려는데 엘리베이터에 꽉 들어찬 사람들에게 내가 차마 내려달라고 부탁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외국인이 “좀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몇 명이 내리자 당시 나는 자동적으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후 그 외국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왜 죄송한 거죠? 휠체어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못 타잖아요. 당연히 휠체어는 엘리베이터 우선 이용인데요.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요.”
발달장애인들의 낯선 행동을 비장애인들이 이상하거나, 위협적으로 느끼면서 '가해자'로 몰아가고, 장애인 돌봄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떠넘겨지는 게 OECD선진국이란 한국의 장애인 가정 현실이다. '발달장애국가책임제'를 부르짖으며 수백명 부모들이 삭발하고, 그 사이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부모 사례가 뉴스에 계속 등장하며, 말기암으로 언제 숨질지 모르는 엄마가 두 발달장애 남매가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울며 시위하는 게 현실이다.
유치장 장면이 극 중 들어간 이유는 조금 더 불편하다. 극중에서 동생 재우의 장애는 이제까지는 주로 주인공 두 사람의 러브라인을 쌓아 올리는 데 소비되어 왔다. 주인공 최치열(정경호)이 남행선과 본격적으로 마주치게 된 것도 재우의 장애가 계기가 됐다. 호랑이 문양을 좋아하는 재우가 주인공 최치열(정경호 분) 옷의 호랑이 그림을 휴대폰으로 찍고 이를 오해한 치열이 실랑이를 하다 휴대폰이 망가지는 걸 계기로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재우가 유치장에 갇히는 사건은 눈물흘리는 행선의 모습을 경찰서에서 본 치열이 혼자 술 마시던 행선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이어지며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계기가 된다. K콘텐트 전문연구자인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수석연구원은 이 장면을 보고 “드라마에서 장애가 주인공의 고난 액세서리로 등장하는 설정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장애를 '고난 액세서리'화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드라마가 2022년에 나왔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우영우>는 장애가 있는 주인공은 물론 주변 비장애인들의 심리와 행동까지 섬세하게 묘사해 호평을 받았다. <우블>은 작가가 오랜 리서치 끝에 실제 장애인을 극에 등장시켜 기념비적이었다. <일타스캔들>에서도 발달장애인을 시설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엿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한 것만은 인정한다.
장애를 프로그램에, 드라마에, 영화에 등장시키고 장애를 소비하는 대신 작품에 제대로 반영하려는 제작자가 있다면 그 노력에 우선 격려를 해 주어야 한다. 대중문화 작품에 장애를 등장시키는 데에는 많은 공과 노력이 든다.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모여라 딩동댕>에는 작년부터 휠체어 이용 캐릭터 '하늘이'가 등장한다. 어린이 프로그램 최초로 장애 반영 캐릭터를 등장시키기 위해 이지현 PD는 여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 당연히 캐릭터 개발에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비용과 노력이 더 든다고 반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게 당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중문화 콘텐트에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미 <우영우>는 발달장애 인식 개선에 가장 효과적인 콘텐트다.
장애를 비롯한 다양성 반영은 K콘텐트 글로벌화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여러 '몸의 다양함'을 화면이나 스크린에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나 작품의 가치를 더 인정한다. 영국 BBC에는 '장애인을 무능력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이 있고, 미국 아카데미는 2025년부터 수상 자격에 성, 인종, 장애 등의 다양성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사실 이런 요소를 다 차치하고라도 <일타스캔들>에서 이 장면이 불편했던 이유가 또 있었다. 그냥 그 장면이 너무 '행선스럽지 않기' 때문이었다. 딸(사실은 조카이지만)의 입시학원 특별반 탈락에 공정을 외치며 학원 앞에서 메가폰으로 시위하던 당찬 모습은 다 어디에 간 건가. “부모님 돌아가시고 동생을 데리고 살아서 숨소리 하나만 들어도 안다”는 행선이다. 그렇다면 동생이 억울한 일을 당한 걸 뻔히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 특유의 또박또박한 딕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에요”라며 따질 수는 없었을까? 그런 모습을 치열이 목격했더라도 러브라인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텐데.
드라마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았다. 앞으로의 에피소드에서 남행선은 카페 사장에게서 “제가 직원 교육을 잘 못 시켜서 저희 직원이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란 사과를 과연 들을 수 있을지?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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