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불평등’이 가능키나 한가[김유찬의 실용재정](19)
최근 <좋은 불평등>(최병천)이라는 출판물이 논란이다. 중국과의 교역이 빠르게 증가하던 시기에 소득 상위계층에 속하던 대기업 종사자들의 소득이 증가했으며, 이것이 불평등을 늘렸으니 이러한 불평등은 좋다는 것이고, 역으로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을 낮추면서 진행되는 평등은 나쁜 평등이라는 분석을 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성장과 함께 진행되는 불평등은 긍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언론은 이 책에서 제기하는 몇 가지 내용이 진보진영의 오랜 통념을 뒤집는다고 했다. 이 뜬금없는 평가에 몇 가지 개념적 지적을 해본다.
불평등 확대의 해악
중국과의 교역 증가는 짧은 기간의 일이 아니다. 상당한 기간에 걸친 발전이다. 진보진영에서 중국과의 교역 증가가 불평등 확대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이루어진 고용 축소와 비정규직 확대를 진보진영이 우리 사회 불평등 확대의 계기로 본다는 것인데, 이 책은 진보진영의 시각이 틀렸고 중국과의 교역증가가 불평등 확대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자가 옳다고 해서 전자의 개연성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확대되는 시기 대기업의 소득과 종사자들의 소득이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불평등의 확대는 통계자료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불평등이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불평등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느냐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좋은 불평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념 사용자들의 가치체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불평등 개념을 전제로 중국과의 교역증가로 좋은 불평등이 생겼고, 이것이 자료로 증명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대단한 비약이다.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은 중국과의 교역 증가로 이루어진 불평등 확대를 좋은 불평등이라고 보는 근거를 ‘상위계층의 소득증가가 낙수효과를 통해 하위계층의 소득도 높여줄 것’이라는 가능성에 두고 있다. 하지만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수십년을 한국에서 체류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득 상위계층이 늘어난 소득을 소비에 사용해 내수를 늘리는 것보다 저축을 통해 부동산 및 주식시장의 자산증식에 주력하는 이상 불평등은 더 확대될 뿐이다.
대외 경제여건의 변화는 피하기도 어렵고 부정적으로 볼 대상도 아니다. 지금까지 중국과의 교역 확대와 대기업 수출 증가는 성장 측면에서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한 여건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은 아니며 미래의 대외여건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에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외여건은 불평등 확대의 여부에도 불구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국내적인 정책수단을 사용해 불평등의 확대를 상쇄시키려는 노력은 경주돼야 한다.
한 국가 내에서 어떤 연유든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이 증가할 때 다른 소득계층으로의 파급효과가 취약하다면 그것은 불평등의 강화를 제어하는 제도적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불평등 문제의 근원이다. 예를 들어 왜 낙수효과가 생기지 않았는가가 불평등에 대한 규범적 연구에서 중심 논점이 돼야 한다. 대외경제적 여건 변화가 우리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정부의 정책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외 교역여건으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시기라면 이를 정책적으로 상쇄시켜줄 수 있는 정책적 기제를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면 비판의 초점은 정부의 정책대응에 있어야 한다. 문제의 책은 대외 경제여건으로 인해 생겨난 불평등 그 자체를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과녁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한번 정착된 불평등은 여간해서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부와 소득의 격차는 여러 세대를 유지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사회갈등의 증가 유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그 사회 경제발전의 속도도 늦어지게 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장기적 관계를 보여줬다. 그에 따르면 경제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불평등의 사회경제적 해악은 심각하며 불평등 문제의 해결은 지난한 일이다. 불평등이 어떤 계기에서 만들어졌는지 차이가 없다. 불평등은 다만 한 사회 내에서 부나 소득의 상대적 격차가 큰 상황을 말할 뿐이며 해악은 동일하게 치명적이다. 어떤 계기로 불평등이 정착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불평등의 해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이며 성장일변도 마인드를 가진 사람의 정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불평등 개선을 위한 정책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국가는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이라는 이중적 불평등에 직면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금융완화 정책은 코로나19 위기로 이어지면서 저금리를 통해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버블을 만들었고 소득불평등을 자산불평등으로 전환시켰다. 자산불평등은 소득불평등보다 심각한 수준이며 대처하기 더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전까지 통화당국은 낮은 이자율의 유지를 통해 고용의 확대와 경제발전을 기대하면서 자산불평등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통화당국들의 정책 전환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이자율 수준은 상향 조정됐다. 자산불평등 문제는 이제 해결되는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버블이 형성되면서 벌어진 자산 격차는 버블이 파괴될 때 자산 취약계층에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간다. 자산이 든든한 이들은 위기에도 오래 버틸 수 있지만, 취약계층은 이자 부담을 오래 견딜 수 없다. 한번 정착된 불평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평등은 대를 이어서 세습된다. 이것이 아마도 불평등의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재정정책이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조세제도는 응능부담 원칙(개인의 납세 능력에 맞게 과세)에 충실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주축으로 한 적절한 수준의 세 부담을 정착시키고 필요한 수준의 재정지출이 가능하도록 재정 조달의 기능을 감당해줘야 한다. 마련된 재원은 복지와 교육 및 사회안전 등 인프라 투자에 효율적으로 활용돼 기저층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세입과 세출의 양방향에서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정이 조달되고 사용돼 양극화를 점진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재정정책이 제대로 역할을 해줘야 한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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