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의 1월 랠리에 진정제를 놓을 줄 알았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오히려 자양강장제를 선물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대로 0.25%p 올려 가이던스를 4.5~4.75%로 높였다. 연준은 이날 성명서에서 만장일치로 금리인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혀 장중 한 때 투자가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는 이 발표 후인 오후 2시 이후 500포인트 가깝게 빠지면서 잔뜩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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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척하던 파월이 흘린 두 마디 "a couple of & disinf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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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2시 반부터 이어진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에서 연준이 직면한 딜레마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시장에 경고를 보내 듯 "일부 전략가들이 올해 금리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어진 채권시장 위기재발 가능성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고, 경기전망에 대해서는 "다소 억제된 속도이기는 하지만 올해 (기존 예상되던 경기침체와는 반대로) 성장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예상으로라면 올해 플러스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특히 파월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서 정책완화를 예상할 수 있는 2가지 단어를 언급했다. 첫째는 금리인상과 관련해 'a couple of'라는 구문을 쓴 것이다. 금리인상을 지속하지만 실제 인상은 '한 두 차례'에 머물 것이란 여지를 남겼다. 또 하나는 인플레이션의 완화를 인정하듯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란 단어를 언급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된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연준 의장이 뱉은 단어들은 이런 맥락에서 미국 경기가 기존 우려되던 침체 일변도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으로 이어질 기대에 화답하는 분명한 증거가 됐다. 곧바로 증시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500포인트 넘게 빠졌던 다우존스지수는 보합선으로 치고 올랐고, S&P500은 1%대, 나스닥 지수는 2%까지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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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월에 한 두차례 더 올리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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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연준은 금리인상이 기존 점도표에 따라 하이킹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상방 한계선은 5%를 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천장에 쐐기가 박히자 투자가들은 안도했다. 파웰 의장은 기준금리를 5% 미만으로 유지할 것이냐는 물음에 "확실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날 인상으로 4.50%에서 4.75% 범위에 이른 기준금리가 앞으로 최대 한 두 차례, 0.25%~0.5%p에 인상에 머물 거란 추론이 확실해진 셈이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정말 심각한 경기침체나 큰 폭의 실업률 증가없이도 인플레이션율을 2%대로 다시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지는 단계) 과정이 시작됐고, 특히 상품 가격 등에서 기미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월은 그러나 "인플레이션과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를 선언하거나 어떤 확실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시기상조"라며 "이미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은 초기 단계에 있지만 특히 주택을 제외한 핵심 서비스에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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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의 축포…50조 자사주 매입에 장외 17%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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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의 경기회복 가능성 시사에 부응하듯 시장에선 대형주들의 상승이 두드러졌다. 일단 장중에 2.79% 상승에 머물렀던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가 장 마감 후 4분기 수익보고서에서 추정치를 초과한 실적을 발표하며 17.85%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타는 이날 매출이 예상치(315억 달러)를 넘어선 321억 달러라고 밝혔고, 앞으로 400억 달러(약 50조원) 어치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메타는 창업주인 마크 주커버그(사진 위)가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메타버스 사업계획을 조기에 실행하면서 지난해 주가가 60% 가량 빠지기도 했다. 메타의 관련 사업부가 4분기 중 42억 달러(약 5조원) 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도 치명타가 됐다. 하지만 이번 실적의 예상치 상회와 주주환원 정책은 주가에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4분기 실적장세에는 피트니스 장비사인 펠로톤(Peloton)도 합류했다. 이 회사는 장중에 순손실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는 발표를 내놓았고, 주가는 26% 이상 급등했다. 반도체 제조사인 AMD도 어제자 발표에서 올 1분기 매출이 10%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다소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지만 4분기 실적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주가는 12.6%나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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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 이어 기대되는 채권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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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이 채권시장 위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골드만삭스는 지금이 채권에 투자할 가장 큰 기회라고 밝혔다. 골드만자산운용 채권 부대표인 휘트니 왓슨은 "채권시장에서 리스크 헷지 기회가 커지고 있다"며 "10여년 만에 가장 큰 찬스"라고 진단했다.
낙관론이 비대해지는 가운데 아직까지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전문가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의 투자책임자 크리스 자카렐리는 "1월 랠리는 언제든 돌변해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잠시 멈추다가 지표에 따라 다시 인상을 지속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어 "연준은 장기간 높은 금리를 유지할 수 있고 그 사이 경기침체가 시작되면 시장의 낙폭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재 시장에서 금 값은 전일보다 1트로이온스당 13달러 오른 1,956.60달러에 마감했다. 지난해 4월 22일 이후 거래된 최고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