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제도권 밖 돌봄 선생님, 공동체 소멸에 맞선 삶

조재휘 영화평론가 입력 2023. 2.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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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2023)는 건물 아래서 아이들이 어울려 뛰어노는 모습을 비추며 막을 연다.

웃고 떠드는 소리와 활기로 가득 차있던 마당은 이내 시간의 경과를 알리는 장면 전환과 함께 인적 없는 황량한 풍경으로 뒤바뀐다.

1996년 시작한 이래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꾸려가는 조합형 생활공동체.

그럼에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촬영에는 자연스러움 속에 엄격한 형식미학 흔적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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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2023)는 건물 아래서 아이들이 어울려 뛰어노는 모습을 비추며 막을 연다. 웃고 떠드는 소리와 활기로 가득 차있던 마당은 이내 시간의 경과를 알리는 장면 전환과 함께 인적 없는 황량한 풍경으로 뒤바뀐다. 카메라는 텅 빈 실내에 들어서서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쌀을 씻어 밥을 짓고, 편지를 쓰는 등 아이들을 맞이할 하루의 준비에 여념 없는 교사의 발걸음과 손길을 일일이 따라가 속속들이 담는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순간으로 채워진 오프닝은 영화의 핵심을 은근히 들추어낸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늘날 존립이 위태롭고 사라져만 가는 공동체의 가치에 관한 영화이다. 또한 경력을 인정받지도, 봉급을 넉넉히 받지도 못하면서도 소중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제도권 밖 교육자들의 지난한 노동에 관한 쓸쓸한 소회이다. 박홍렬 황다은 감독은 감정의 흘러넘침 없이, 프레임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이들의 집단적 움직임과 감정 그리고 목소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영화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의 방과 후 생활을 도맡는 ‘도토리 마을 방과후’를 다룬다. 1996년 시작한 이래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꾸려가는 조합형 생활공동체. 이곳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함께 하고, 밥을 같이 먹고, 체험을 공유하며 서로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해 지켜야 할 예의와 규칙을 익히며 자란다. 교육에서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경쟁이 지배적인 이념이자 원리로 골수까지 박여버린 이기주의 세속에서, 오늘날 나눔과 어울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더없이 어색하고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도토리 마을 방과 후의 훈육 시스템, 돌봄에 관한 논의는 망가져 가는 교육 현실에 대한 유토피아적 대안 모색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큐멘터리는 현장의 예술이고, 따라서 의도한 대로 연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촬영에는 자연스러움 속에 엄격한 형식미학 흔적이 묻어난다. 도어 프레임, 좌우 대칭 구도, 원형 배치 등, 안정된 짜임새의 화면 구성과 넓은 프레이밍은 관조의 물러남이라기보다는 ‘나의 아저씨’(1958)나 ‘7인의 사무라이’(1954)처럼 전체 공동체의 정감을 넉넉히 한데 아우르고 단정히 담으려는 의도의 소산이다. 깊은 초점심도로 누구 하나 배제함 없이 공간에 속한 모든 구성원을 담아내려는 화면의 민주주의. 이런 형식은 절제된 톤의 내레이션과 더불어 영화가 전달하려는 바를 정서적으로 공감케 해준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방과 후 교사들은 차례차례 도토리 마을 방과 후를 떠난다. 결말에서 영화는 돌봄의 가치를 망각해가는 미래에 대한 근심과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맺음은 릴레이 경주에서 배턴을 터치하듯 관객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넘겨주는 것이기도 하다. ‘위험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힘도 함께 자라네’(프리드리히 횔덜린)라는 시 구절처럼, 위기를 진정 위기로 인식할 수 있게 된 순간, 비로소 전환의 계기가 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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