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등산, 나를 매혹시킨 한국인의 스포츠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3. 2.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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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국에서 만난 가장 오랜 친구이자 취미를 잃었다. 바로 등산이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날씨와 관계없이 주말마다 등산하곤 했다. 한 달에 여러 번 가기도 했는데, 집 뒤에 있는 북악산을 많이 찾았다. 그러다 약 2년 전, 등산을 마치고 내려올 때마다 무릎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머지않아 골관절염 판정을 받았고, 의사는 등산은 이제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인생에는 삐걱대는 무릎보다 더 비극적인 일도 많다. 등산을 가지 못해도 감사하게도 자전거를 타거나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있고, 평지 산책 정도는 아직 거뜬하다. 요새는 등산 대신 청계천을 따라 자주 걷는다. 빈대떡처럼 납작하니 평평해서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간 한국에서의 삶을 특별하게 한 것은 등산이었다. 한국 어딜 가나 산지를 따라 근사한 산책로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싸고 독특한 등산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등산은 ‘집단 스포츠’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사회로부터 도피하고자 산을 오르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단체로 등산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의 등산 경험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쳤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1980년대의 기억은 등산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한국에 도착해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당연히도 출입국 심사관리관이었다. 당시 그는 영어를, 나는 한국어를 연습하던 터라 대화를 꾸준히 이어가게 되었고, 이 관계는 추후 주한미국대사관과 이민국의 젊은 직원들이 주축을 이룬 정기적인 한미 등산 교류 모임으로 발전했다.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할 때는 정치인, 같은 교회 교인, 청년, 군, 경찰 등 각종 다양한 집단과 함께 경산 일대까지 누볐다. 식목일에는 나무 심기 운동도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등산에 깊이 매료된 데에는 아마도 ‘공공재적 성격’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별도의 입장료나 예약, 전용 회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산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동전의 양면은, 성수기에 서울 시민 모두가 같은 산을 오른다는 착각이 들 만큼 북적일 때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등산 애호가들의 건강한 기운을 나눈다는 면에서 좋았다.

최근 들어 한국의 등산 트렌드에 변화의 바람이 이는 듯하다. 북악산을 예로 들면, 청와대 뒤로 뻗은 등산로는 매해 서서히 개방되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2022년에야 비로소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한국에 막 도착했던 1984년만 해도 북악산 근처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차츰 산 진입로도 다양해지고, 등산코스 안내도도 구체화되고, 대중교통의 편의성이 더해져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등산로 역시 확연히 다채로워진 듯하다. 또 하나 두드러진 변화는 등산객들의 패션이다. 사실 내가 등산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타 스포츠 대비 등산용품이 비교적 간소하고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튼튼한 신발, 날씨에 맞고 움직임이 편한 옷, 해가 강한 날이면 낡은 캡 모자 하나만 더하면 충분하니 말이다. 반면 북악산 3시간 코스에서 나는 종종 일주일간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과 같은 모습의 등산객들과 마주하곤 한다. 집채만 한 배낭, 여러 겹 겹쳐 입은 수입 등산복, 트레킹 폴, GPS 시계, 특수 고글 및 고급 헤드기어 등을 소위 ‘풀 장착’한 이들을 보면 갑자기 상대적 박탈과 빈곤이 엄습한다.

한국의 등산문화를 설명할 때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 음식이다. 도심을 벗어나면 국립공원 산자락에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토리묵, 빈대떡, 파전, 닭 백숙, 비빔밥, 갈비, 그리고 막걸리는 하산 후 마무리로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별미다. 접이식 테이블과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인 의자가 깔린 야외라면 더 좋다. 맛있는 음식, 함께하는 사람, 그리고 자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 한 가지 (좋지만은 않은) 강렬한 기억이 있다. 2013년 8월, 나 홀로 등산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의 교섭 수석대표였다. 어느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나서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을 찾았다. 초행길인 데다 휴대폰이나 지도, 도와줄 한국인 친구도 없는 상황이었다.

6시간가량 산길을 헤맸지만 주변에 상시 다른 등산객이 보여 무섭거나 길을 완전히 잃었다는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간신히 진입로 밖으로 향하는 길을 되찾아 마을로 들어설 때쯤 완전히 지쳐있었고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비 오듯 땀을 흘리는 바람에 흡사 작은 인간 폭포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인근 식당에 들어가 ‘최애 등산 후 메뉴’인 도토리묵과 파전을 주문했다. 그러자 주변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땀이 흐르는 바람에 앉은 의자 밑으로 작은 웅덩이가 생긴 상황이었다. 식당 주인이 급기야 걸어오더니 괜찮으냐고 물어봤고, 그저 한국인보다 땀을 많이 흘릴 뿐 정말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것만은 충분히 알겠다는 듯이 말없이 반복해서 나와 땀 웅덩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마 근시일 내로는 독자나 지인을 등산하다 우연히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아쉽다. 언젠가 청계천로에서 산책하다가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 키 큰 외국인을 발견하면 주저 말고 반갑게 손 흔들어 인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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