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때리기 나선 ‘한한령’… 중국이 오히려 피해 더 컸다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3. 2.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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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 에디터의 Special Report] 한한령의 겉과 속
①中에서 쫓겨나자 더 강해진 K콘텐츠
②충격을 기회로 바꾼 관광·면세점 업계
③한국 反中 정서 최고로 치솟아 중국 타격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정국'의 중국 팬클럽 '정국 차이나'가 2021년 9월 1일 부산 해운대 해변 열차에 생일 축하 문구를 랩핑해 놓은 모습(위)

2016년 7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한중(韓中) 관계는 소용돌이쳤다.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라는 비공식적인 보복 조치와 불매운동·차별 공격을 한국측에 퍼부은 탓이다.

한국 연예인이 등장한 영화·드라마·음악 등 K콘텐츠 상영·공연과 광고·양국 공동제작이 전면 금지됐고, 중국 내 한국 화장품 판매 급감과 한국 식당 폐업이 잇따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중국 사업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2017년 초 중국 안에서 벌어진 '한한령' 모습. 칭다오 한국총영사관 앞에 ‘사드 반대’ ‘롯데 제재’ 등의 팻말을 든 중국인 시위대가 등장했고(왼쪽), 중국 내 롯데마트 17곳에서 위생·안전·소방 점검이 일제히 실시됐다(가운데). 현대차를 부수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올라왔다(오른쪽)./조선일보DB

2017년 3월부터는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까지 중단돼 한국 관광·면세점 업계와 서울 명동(明洞) 같은 상권이 휘청거렸다. 7년째 진행 중인 한한령은 중국측 의도 대로 한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을까?

◇콘텐츠 對中 수출 2.5배 늘어

당시 중국 사업으로 큰 돈을 벌던 한국 엔터테인먼트·게임 회사들의 주가(株價)는 폭락했다. ‘이제 한류(韓流)는 끝났다’는 탄식과 비관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한한령에 따른 벼랑끝 위기를 거뜬히 이겨냈다.

중국인 취향에 억지로 맞추고 그들의 간섭을 수용하던 제작 방식을 벗어던진 게 승부수(勝負手)였다.

김윤지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한령을 계기로 K콘텐츠는 동남아와 북미, 유럽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진정한 글로벌 콘텐츠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2016년 60억달러이던 K콘텐츠 총수출액은 2021년 124억달러대로 5년 만에 배 넘게 늘었다.

'K 콘텐츠'와 'K 컬쳐'는 음악·영화·드라마·게임 등 분야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그래픽=백형선

중국인 멤버가 없는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 세계 1위에 올랐고,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賞) 4관왕 수상,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에미상 6개 부문 석권도 이어졌다.

신규 진출 대신 기존 상품 재판매와 홍콩·대만 등 주변부 공략에 힘쓴 결과, K콘텐츠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2016년부터 매년 증가해 4년 만에 2.5배 늘었다. 2015년 51개국이던 K팝 수출 대상국은 2021년 말 148개국이 됐다.

아이돌 그룹 BTS가 2020년 10월 10일 전 세계의 '아미(BTS 팬)'와 화상으로 소통하며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과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그해 10월 7일 BTS의 미국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일제히 비난하며 트집 잡았다./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중국에서 6년 넘게 사실상 쫓겨난 K콘텐츠가 대중(對中) 의존을 끊고 진일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한령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폭제였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중국 자본·시장이라는 족쇄에서 해방한 K콘텐츠의 도약은 전형적인 소실대득(小失大得·작게 잃고 크게 얻음) 사례”라고 했다.

산업연구원(KIET)은 2017년 5월 “한한령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입는 직간접 피해 규모가 최소 5조 6000억원에서 최대 15조 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상당부분은 중국 당국의 한국으로 단체여행 제한 조치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밝혔다.

◇脫중국 속도 더 빨라져

실상은 어땠을까?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실제로 2016년 806만명에서 이듬해 417만명으로 반토막났다. 그러나 2~3년 만에 충격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중국 정부가 2017년 3월 3일 자국민들의 한국 단체 관광을 전면 금지시킨 지 5일째인 같은해 3월 8일 한산한 중국 국적기 항공사 출국장 모습/조선일보DB

2019년 중국 관광객은 602만명으로 75% 수준을 회복했고, 같은해 방한(訪韓)한 외국인 총관광객은 한한령이 터진 2017년 인원을 420만명 이상 웃돌았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단체 여행객 대신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을 꾸준히 유치하고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 등 동남아 관광객을 2~3배 늘리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편 결과”라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는 시장 다변화로 체질(體質)을 개선했다. 일례로 2017년 초 3개국 4개이던 롯데면세점의 해외 매장은 이달 현재 6개국 13개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한령이 터진 2016~2018년에도 회사 총매출액은 줄지 않았다”며 “동남아·호주·뉴질랜드 진출로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2019년 3월 25일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서 열린 롯데면세점 그랜드 오픈 행사. (왼쪽 세번째부터) 롯데면세점 모델 엑소 수호, 송용덕 롯데그룹 호텔&서비스 BU 부회장,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게르트-얀 디 그라프 브리즈번 공항공사 대표, 윤상수 시드니 총영사, 스테판 팀스 롯데면세점 오세아니아 법인 대표, 엑소 카이가 테이프 커팅하고 있다./조선일보DB

중국공산당의 말 한마디로 사업 자체가 붕괴되는 중국의 민낯을 한국 기업들이 확인한 점도 소득이다. 한국과 제조업에서 최대 경합 관계에 있는 중국은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유무형(有無形)의 압박과 불이익을 가하고 있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최근 침체기에도 탈(脫)중국을 단행한 업종의 한국 기업들이 선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럿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로 돌아온 유턴 기업 126개 중 97개(77%)가 중국 진출 기업”이라며 “특히 한한령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중국 탈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失敗)”

한국은 한한령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반면, 중국은 ‘한국 때리기’라는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한령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는 한국 보다 중국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예로 중국내 K콘텐츠 호감도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새 80~90%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도 일부 호들갑과 달리 ‘찻잔속 태풍’에 그쳤다.

오히려 한한령에 대한 역풍으로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한국 국민이 한한령 이전 보다 훨씬 많아졌다. 여기에다 2019년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통과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늑대외교’ 공세, 문재인 정부의 대중(對中) 저자세 외교가 겹치면서 한국인의 반중(反中) 정서는 고조됐다.

'반중' 정서는 202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21년 6월 5일(현지 시각) 낮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1만여명의 시민들이 ‘NO 푸단대’ ‘식민지를 만들지 말라’ 등의 반중(反中) 구호를 들고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페이스북

미국 조사기관 ‘퓨 리서치’는 “2015년 37%이던 한국내 반중 정서가 2017년 51%로 올랐고 2022년 8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인 10명 중 8명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양국 수교 이후 30년 만의 최악 상황이다.

권기영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에 대해 한국인의 멀어진 마음과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중국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한한령’은 중국의 명백한 정책적 실패(失敗)”라고 말했다.

중국은 우리나라 국립과 사립대 22곳에 공자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공자학원 퇴출 시위를 벌이고 있다./조선일보DB

한한령을 통해 중국은 문화 교류까지 겁박·차단하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여파로 한국 청년 세대 사이에 혐중(嫌中) 감정이 확산하고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먼저 대국(大國) 다운 도량(度量)을 갖고 주변국 존중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제2 한한령 막으려면 정책결정자들부터 中에 당당한 의지 보여야”

주재우 경희대 교수

“‘한한령’은 한류 콘텐츠에 내재된 자유·인권·민주 DNA가 중국 대중에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한국 내 사드 철회가 이뤄지지 않는 한, 한한령은 장기간 미제(未濟)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주재우경희대 교수는 “2000년 마늘 파동 보복으로 한국산 휴대폰 등 수입을 규제한 것으로 시작으로 중국은 20년 넘게 틈만 나면 한국 정부와 지도층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며 “중국이 ‘안보 위협’이라며 한한령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반도체 등 핵심 업종은 손도 못 대고, 눈에 확 띠면서 자국에는 피해가 없는 엔터테인먼트·관광·화장품 분야에서 한국을 때렸으나 생각했던 목표를 거의 이루지 못했다.”

주 교수는 “그러나 중국이 효과를 거둔 유일한 곳은 한국 지도층, 특히 정책 결정자들의 기세(氣勢)를 꺾고 중국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더 높인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외교관 등 한국 지도층의 머릿속에 똬리틀고 있는 공중증(恐中症·중국 공포증)을 제거하고 뿌리뽑는 일이 가장 긴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중국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제1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 안에 있다. 중국에 군사적, 전략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지정학적 구도이다.

“중국은 지금 한국 만한 경제력과 군사력, 대외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공식적으로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양국 관계에서 더 초조하고 아쉬운 쪽은 중국이다.”

주 교수는 “2016~17년과 비교해 중국의 국제 정치·경제적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며 “제2, 제3의 한한령을 막으려면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응한 것처럼, 우리 지도층과 국민이 중국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의지(意志)를 보여주는 게 최선의 방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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