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66] 초창기 재즈의 풍경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2023. 2. 2.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체 파악 없이 우리나라에서 연주된 첫 번째 재즈라고 간혹 언급되는 곡이 있다. 1926년에 ‘연악회(硏樂會)’가 연주한 ‘수음로상행진곡(樹陰路上行進曲)’이 그것이다. 사실 이 곡은 미국인 에드윈 골드먼(Edwin Frank Goldman)이 작곡한 ‘온 더 몰(On the Mall)’이라는 행진곡을 제목만 당시 일본어 표기로 바꾼 것이다. 에드윈 골드먼은 뉴욕시 센트럴파크에 새로 개장한 ‘나움버그 밴드셸(Naumburg Bandshell)’이라는 공연장에서 1923년 9월 29일에 이 곡을 초연했다. 당시 관객들이 환호와 휘파람 등의 반응을 보여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재즈의 중요한 요소인 즉흥연주나 재즈적인 화성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 곡을 재즈로 간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이 곡을 처음 선보인 연악회는 1922년에 홍난파가 서양 음악을 교육하고 보급할 목적으로 창설했는데, 주로 서양의 고전 음악이나 가곡, 민요 등을 연주했기 때문에 재즈 밴드와 거리가 멀다.

오늘날에는 재즈로 규정할 수 없는 ‘수음로상행진곡’을 당시에는 재즈로 지칭하기도 했던 데서 혼선이 빚어졌다. ‘현악합주’라고 지칭한 신문 기사도 있었지만, 재즈로 명명한 기사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926년 2월 11일 자 기사에서 이 곡을 ‘웃음거리의 속곡(俗曲)’이라는 설명과 함께 ‘재즈’로 소개하였다. 서양 대중음악을 지칭하거나 그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일군의 대중음악을 광복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재즈’ 또는 ‘재즈송’이라고 통칭하기도 했다. 장르 인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초기 대중음악의 한 풍경이다.

1929년에는 미국 재즈의 패왕이라 불린 폴 화이트먼(Paul Whiteman)의 음반이 직수입되는가 하면, 루이스 프리마(Louis Prima)가 작곡하여 1936년에 발표한 스윙 재즈의 대표곡 ‘Sing Sing Sing’은 1939년에 손목인의 목소리로 발표되기도 했다. 김해송의 하와이안 기타 연주에 매료되어 음악의 길로 들어선 손석우는, 김해송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재즈로 편곡해 스캣을 넣어가며 무대에서 노래했다고 증언하였다. 또 트럼펫 연주자 현경섭은 재즈 음악가 베니 굿맨(Benny Goodman)이 출연한 영화 ‘할리우드 호텔’을 관람한 1939년 6월 26일 자 일기에 “나는 끝까지라도 그 사람들의 흉내를 조금이라도 한번 내 보겠다”며 재즈를 향한 열정을 술회했다.

2023 제15회 서울재즈페스티벌의 1차 진용이 공개되고 조기 예매가 시작되었다. 초창기 재즈에 대한 애정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재즈 연주자들과 재즈 마니아 덕분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