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72]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길
‘해리 포터’의 한 장면. 주인공들이 벽난로 속에 차례로 들어가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선 녹색 섬광과 함께 사라진다. 그렇게 공간이동을 통해 도착하는 곳은 ‘다이애곤 골목(Diagon Alley)’으로, 영국 요크(York) 시의 ‘샴블즈(The Shambles)’에서 영감을 받은 장소다. 영화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이 되었다.
14~15세기에 지어진 중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이 거리는 9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구불구불한 골목의 바닥은 커다란 돌로 마감되어 있고, 양옆으로는 목조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다. 골목이 좁아 어떤 지점에서는 양팔을 뻗치면 양옆의 건물을 동시에 손으로 닿을 수 있다. 건물 상부가 일 층보다 더 돌출되어 있어 창문을 열면 건너편 이웃과 대화도 가능하다.
샴블즈는 원래 ‘상점 정면의 선반’을 뜻하는 앵글로색슨 단어인데, 후에는 ‘노천 도축장’이나 ‘육류 시장’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름이 상징하는 대로 과거에 이 골목의 건물들은 뒤편에 도축 공간, 앞쪽으로는 푸줏간을 갖춘 형태였다. 좁은 폭에 비해서 건물이 높은 편이라 골목에는 하루 종일 그늘이 진다. 이는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상점 앞에 걸어 놓은 생고기를 시원하게 보존하기에 유리했다. 지금도 몇몇 건물의 두툼한 창틀에는 고기를 걸어두던 고리가 매달려 있다. 건물에 면한 보도는 약간 올라와 있고 도로의 바닥 면은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도축 때 동물의 피는 자연스럽게 한편으로 흐르도록 되어있다. 비가 자주 오는 영국의 날씨 덕분에 바닥의 피는 자연스럽게 씻겨 내려갔다.
골목길은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현재까지 그다지 바뀌지 않은 공간이다. 세계의 많은 도시가 이런 골목길의 가치를 인지해서 보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들쑥날쑥한 담벼락과 문짝의 불규칙성과 그 독특한 질감은 감성을 자극한다. 도심 재생의 파괴로부터 살아남은 골목을 걷는 것은 아날로그로 즐길 수 있는 유희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존 케리 美기후특사 “韓탄소중립, 재생E 축소 우려” 비공개 서한
- MLB 한국인 빅리거들 전망은?
- [단독] 회계자료 낸 노조 민노총 산하 39%, 한노총 산하 95%
- [단독] “형도 2000만원 받았어?” 임협 때 뒷돈 챙긴 택시노조 간부들
- [단독] 2022년 택시 임금협정은 ‘변종 사납금제’...노동위의 불법 판정 잇따라
- [단독] 박영수 200억대 대장동 땅·건물 약정 혐의, 검찰 뒷북 압수수색
- [단독] 민노총 국장,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LNG 탱크 마비 준비 지령도... 北, 2018년 화해 무드 때 청와대 마비 첩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