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럼, 꿈처럼 다가온 그림책 [책방지기의 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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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예지책방은 그림책 전문 책방이기에 오월 그림책들을 중심으로 전시했지만 소설과 자료도 전시하려 노력했다.
'봄꿈' 그림책 한 권으로 지역과 거리에 상관없이 마음이 모이는 경험은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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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2020년부터 광주에 있는 동네책방과 5·18기념재단이 '오월서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담고 있는 책들을 전시하며 매년 5월이 다가오면 전시나 기획전을 진행한다. 예지책방은 그림책 전문 책방이기에 오월 그림책들을 중심으로 전시했지만 소설과 자료도 전시하려 노력했다. 2019년 '씩스틴' 이후로 새로운 오월 그림책이 출간되지 않아 아쉬움이 생길 즈음인 지난해 5월 18일. '봄꿈'을 만났다.
'봄꿈'은 2021년 5월 17일. '강아지똥'으로 친숙한 고 권정생 작가님의 14주기 추모식에서 공개된 미발표 원고에서 시작되었다. 작가님은 어느 날 신문에서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가 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뒤늦게 깨달은 죄책감과 미안함에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셨다. 그 편지는 시간이 흘러 길벗어린이 출판사를 통해 고정순 작가님에게로 닿았다. 고 작가님은 이 책을 만들기 전, 광주에서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된 조천호님을 먼저 뵈었다. 조천호님은 작가님께 말씀하셨다.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 날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세요." 작가님은 조천호님의 말씀을 수없이 되뇌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봄꿈'이 세상에 나왔다.
책 표지를 보면 아이는 숨바꼭질의 술래인 듯하다. 나는 이 아이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설렘을 느꼈다.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아빠"를 외치며 묻는다. 누군가를 업어주고 싶어서 빨리 쑥쑥 자라고 싶다며 비밀을 속삭인다. 아빠랑 놀 때 가장 즐거운 아이는 봄이 오면 아빠가 좋아하는 꽃을 찾아주겠다며 "아빠"를 연신 외친다. 하지만 아빠는 대답이 없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꽃은 사라지고 광장에는 총소리와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그 속에서 아이는 아빠의 영정을 품에 안고 그저 앉아있다. 아이가 아빠 영정을 품에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에 저항한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죽어 갔습니다. 독재와 무력에 맞서 싸운 시민과 어린 학생 모두에게,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습니다. 이때 한 가정의 가장은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따뜻한 품 대신 다섯 살 어린 아들은 가슴에 영정 사진을 품었습니다.' ('봄꿈' 본문 중에서)
책이 나온 뒤 고 작가님께서 "광주의 독자들에게 빚을 갚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왔다. 비 내리는 지난해 6월의 어느 저녁, 우리는 광주에 모였다. 작가님이 책을 낭독해주셨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그리고 함께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행동하자고! 그래서 당장 실천으로 옮겼다. 그 만남의 수익금 전액을 광주 고려인 마을에 기부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고려인마을에 정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한국행 비행기 표에 보탤 수 있었다. 수익금 기부 소식을 전했을 때 전국에서 마음이 모였다. '봄꿈' 그림책 한 권으로 지역과 거리에 상관없이 마음이 모이는 경험은 짜릿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의 한국사 교과과정 포함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각지에서의 반발로 다시 포함키로 했다지만, 또다시 반복될지 모른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역사라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주어야 할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그림책은 우리에게 늘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그 질문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려 애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림책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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