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해고는 잔인”... 美근로자들 “그건 얼굴 보고 해야죠”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2. 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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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원격 근무 하는데 원격 해고가 무슨 문제냐’
구글 20년 차 직원 “새벽 이메일 해고 통보, 뺨 맞은 기분”
근로자 67% “해고 통보는 직접 만나서 해야”
미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해고 통보를 이메일로만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림은 20세기 미 기업들이 직원들의 급여와 함께 해고 사실을 분홍 편지지에 적어 공식화하는 일명 '핑크 슬립'의 한 예. 당시에도 인사 담당자가 출근한 직원 얼굴을 보고 해고 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STAT

최근 미국 각 분야에서 대규모 감원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기업들이 이메일로 일방적 해고 통보를 하는 일이 급증해 논란이 번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원격 근무가 일상화했지만, 직원들이 해고 통보만큼은 ‘대면(對面)’ 방식을 원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실리콘밸리다. 빅테크(대형 IT 기업) 업계에선 최근 1년간 20만여 명이 실직했는데 “잔인한 이메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경험담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구글은 직원 1만2000명을, 아마존은 1만8000명을 해고하면서 사전 논의 없이 이메일 통보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에서 20년 일했다는 한 엔지니어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새벽 5시 반에 개인 이메일로 해고 통지서가 와서 (사이버 범죄인) 피싱인 줄 알았는데, 회사 이메일에 접속하니 차단돼 있더라”며 “뺨 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20일 미 빅테크 구글이 직원의 6%인 1만2000명을 해고하면서 이메일로 일방적으로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년 근속한 직원도 이런 방식으로 해고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은 매사추세츠주 구글 사무실의 모습. /EPA 연합뉴스

노동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선 해고가 일상적이지만, 통보를 이메일이나 문자로 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가 확산하고 채용도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가 급증하자, 기업으로선 ‘채용처럼 해고도 온라인으로 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여기는 분위기다. 대규모 감원 시 일일이 면담 일정을 잡기 어렵고, 기술·금융계에선 해고당한 직원이 회사 기밀 유출 등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해고와 동시에 사내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게 기습적인 이메일 통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 샌프란시스코 트위터 본사 모습.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부터 직원 80%, 약 5000여명을 해고했는데 대부분 이메일로만 해고 통보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해고하지 말아야 할 직원에게까지 이메일 통보가 가 이를 번복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트위터의 이같은 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나 이후 빅테크 업계에선 '이메일 대량 해고'가 대세가 됐다. /AP 연합뉴스

반면 최근 서베이몽키 여론조사에서 미 근로자의 67%는 “해고 통보만큼은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고 해야 한다”고 답했다. ‘줌(zoom) 미팅으로 하고 싶다’는 7%, ‘이메일 통보가 낫다’는 사람은 11%에 그쳤다. 상급자나 인사 담당자에게 해고에 대한 설명과 함께 위로를 받고, 그동안 쌓인 불만에 대해서도 대화하는 기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31일 “이별 방식은 사람의 기억에 평생 남는다. ‘사람을 일회용품 취급한다’는 말이 나오면 해당 기업의 평판을 망가뜨릴 수 있다”며 기업들이 이메일 해고 통보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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