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집도 짓기 전 혈세로 미분양 사달라는 건설업계

이미연 2023. 2.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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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호 중 '악성 미분양' 7518호
위기마다 '시장 원리' 위배 논란
국토부 "건설사 자구노력 먼저"
연합뉴스
출처 원희룡 국토부 장관 SNS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7만호에 육박하면서 주택업체들이 아우성이다. 건설사와 시행사 등 주택업계는 정부가 경기안정 차원에서 미분양을 매입하는 등 적극 개입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아직 위험 수위가 아니라며, 국민의 혈세로 미분양 물량을 사주는 것은 자칫 건설업체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부정적 입장이다.

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107호로 집계됐다. 정부가 위험선으로 언급해온 6만2000호를 뛰어넘는 수치다. 전월 대비로는 1만호 넘게 급증했다. 특히 지방의 미분양 급증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급증한 1만호의 미분양은 대부분 대구와 경북, 충남 등 지방에서 발생했는데, 올해 지방에선 8만호 이상의 신규 분양이 예정된 상태다. 일각에선 상반기 중 미분양이 10만호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지난달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매입임대 사업용으로 활용하고, 현재 짓고 있는 미분양 주택은 공공매입 가격수준(최고 분양가 70~75%)으로 공공에서 매입한 뒤 사업 주체에 환매하는 환매조건부 매입을 건의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3일 국토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공기관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차해 취약계층에게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임대보다 공공분양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던 국토부는 부랴부랴 매입임대를 통해 임대물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작년 말 LH가 매입임대제도를 통해 신축 미분양을 시세 대비 12% 정도만 할인된 가격으로 사들인 데 대한 비판적 여론이 커지자 다시 입장을 바꿨다.

원희룡 장관은 "LH가 매입한 임대주택,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는 안산다"며 LH에 매입임대 업무 감찰을 지시한데 이어 "매입임대제도는 건설사의 미분양 해소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원 장관은 "비싸서 소비자들이 사지 않는 주택을, 정부가 세금으로, 그것도 건설사가 원하는 가격으로 살 수는 없다. 미분양 중에도 분양가를 낮추니 바로 완판된 사례가 있다"며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미분양 매입을 고민할 수는 있지만 분양가 인하 등 건설사의 자구 노력이 먼저"라고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환매조건부 매입'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공공기관이 건설 중인 미분양 주택을 현행 공공 매입 가격 수준(최고 분양가 70~75%)으로 매입하고 준공 이후 사업 주체인 건설사에 환매한 것이다. 건설사의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공정률 50% 이상인 단지를 2008년 5000억원, 2009년 1조5000억원 규모로 약 1만가구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이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미분양 물량이 7만가구에 육박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아직 짓기 전 상태다. 준공 후에도 팔리지 못해 '악성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7518호 수준에 그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자동차가 안팔린다고 해서 정부에 혈세를 들여 자동차를 사주라는 격"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이익은 사적으로 챙기고 비용은 사회화하려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건설사 부실을 매입임대로 다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 과도한 미분양은 원칙적으로 시장원리와 사업자 책임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장은 미분양을 사들여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에는 찬성한다면서도 "부동산 활황기에 엄청난 수익을 챙긴 건설기업들의 자구 노력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 혈세로 건설사 구한다'는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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