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에서 난방비 폭탄 ‘주범’ 찾기

박현철 입력 2023. 2. 1. 18:50 수정 2023. 2. 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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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난방비·전기요금·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 반대와 횡재세 도입,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며 서울 종로 거리에서 숭례문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편집국에서] 박현철 | 콘텐츠기획부장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여서일까요. 한국 사람들은 날씨에 관심이 많습니다. 날씨만큼 좋은 이야깃거리도 없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오늘 좀 춥네요, 그죠?”라고 말을 건네봅니다. 어색한 침묵을 깨는 데 이만한 소재가 없습니다.

그러니 설날에 모인 가족들의 화두가 ‘날씨’와 ‘돈’이 만난 난방비였던 건 당연하겠죠. 난방비 ‘폭탄’의 고통을 토로하는 자리는 곧 ‘(이번달) 난방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로 주제를 옮겨 갑니다. ‘누구 때문에 올랐나?’로 질문이 바뀌기도 합니다. ‘이번 정부 탓이다’ ‘지난 정부 때문이다’로 번진다면 각자의 목소리가 좀 커질 수도 있겠죠.

<한겨레> 경제부는 설 연휴 마지막날인 1월24일 ‘30평대 관리비가 55만원…설 밥상머리 화두는 ‘난방비 폭탄’’ 기사를 썼습니다. 서울 양천구 30평형 아파트에 사는 이아무개씨가 등장해서 말합니다. “12월 36만6800원이던 관리비가 1월 54만9610원이 됐다. 관리비 폭탄의 주범은 난방비”라고. 관리비와 난방비가 섞여 있어 헷갈리는데, 이씨의 얘긴 이겁니다. ‘가스비 때문에 난방비가 많이 나왔다’는 거죠. 이 기사 속 난방비 폭탄의 주범은 결국 오른 가스요금입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12월 가스비는 11월에, 1월 가스비는 12월에 쓴 가스의 요금인데요. 그렇다면 11월과 12월 사이에 가스요금이 올랐을까요? 적어도 그건 아닙니다. 2022년 도시가스요금은 4·5·7·10월 네차례에 걸쳐 38.4% 인상됐습니다. 1년 새 많이 오르긴 했지만 10~12월엔 요금체계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의문은 다음날 <한겨레> 기후변화팀이 쓴 ‘12월분 난방비, 예상보다 뜨거운 이유…더 오를 수 있다’에서 풀렸습니다. 지난해 11월은 전국 평균기온이 역대 네번째로 높았던 달이었습니다. 반면 12월 평균기온은 역대 네번째로 낮았다고 합니다. 역대급으로 따뜻한 11월 뒤 역대급으로 추운 12월이 이어졌다는 말입니다. 떨어진 기온만큼 가스 사용량이 늘었겠죠. 결국 이 기사 속 난방비 폭탄의 주범은 추운 날씨입니다.

<한겨레>를 포함해 난방비 급증을 다룬 기사들의 공통점 한가지, 혹시 발견하셨나요? 뉴스 속 난방비 폭탄을 맞은 사례로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파트 거주자입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전국의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51.9%라니, 그럴 수 있긴 합니다만.

아파트는 단독주택이나 빌라, 다세대 주택 등에 비해 단열이 잘돼 상대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습니다. 아파트 거주자 다수는 외부 기온과 상관없이 실내온도를 고정해 놓고 삽니다. 실내온도를 27도 안팎으로 맞춰놓고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파트의 단열이 뛰어나다지만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추위에 초여름 같은 실내온도를 유지하려면, 가스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요. 뉴스가 말하지 않는 난방비 폭탄의 또 다른 주범은 바로 ‘폭탄을 맞은 당사자’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반 시민이 난방비 폭탄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는 거냐?’ 당연히 아닙니다. 난방비 폭탄은 이번달에도 다음 겨울에도 닥칠 겁니다. 대비하자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난방비 폭탄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월26일 <서울신문>이 내보낸 ‘난방비 더 써도 더 추운 ‘단열 빈곤층’’ 기사를 보면,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와 용산구 쪽방촌 주택의 건물 벽면 온도 차이가 20도에 달했습니다. 전국 건축물 중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중이 40%에 가깝다고 합니다. 난방비 폭탄의 공포는 감히 폭탄을 맞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난방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클 겁니다. 보일러가 있어도 돌릴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한겨레> 경제부가 1월29일 쓴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도 없이…‘주먹구구’ 난방비 지원’ 기사를 보면, 현재 정부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가구와 취약계층 117만가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체 가구수(2200만)의 10% 안팎인데요. 지원 조건도 까다롭고,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어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부를 난방비 폭탄의 또 다른 주범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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